매일신문

산골 상황버섯서 찾은 희망

한때는 잘나가던 대도시 건설업체 간부 혹은 인쇄업체 사장. 그러나 지금은 전국 심산을 뒤지며 상황버섯을 따는 심마니. 영양 청기면 남무웅(60) 권창호(49)씨의 간단한 이력서이다. 여기에 토박이 김천원(44)씨가 함께 '삼총사'를 이뤘다.

남씨는 서울의 한 건설업체에서 중견 간부로 일하다 5년 전에 일월면 토곡리 첩첩산중 마을로 낙향했다. 자녀들은 서울에 남겨둔 채 부인(50)과 둘이서 고향길에 나선 것. 빈집을 사 손질해 살면서 주변 밭뙤기를 빌려 천궁.고추.배추.감자 등을 갈기 시작했고, 봄.여름엔 동네 아낙들과 함께 일월산에 올라 산나물을 따 내다 팔았다. 늦겨울.봄에는 산불 감시원일도 맡았다.

권씨는 대구에서 인쇄업을 하다 6년 전 부도를 맞아 연쇄 도산, 자녀들은 대구에 둔 채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칠순 노모만 모시고 낙향했다.

이들이 심마니로 나선 계기는 남씨가 우연히 자연산 상황버섯을 발견한 것. 처음엔 그 가치를 모르니 아는 사람에게 마구 나눠줬다. kg 당 800만∼1천만원이나 하지만, "10여명의 이웃.친구들에게 그냥 나눠 준 것만도 10여kg은 족히 될 것"이라고 남씨는 말했다. 어떤 것이 좋은지 역시 알지 못함으로써 "상황 중에서도 으뜸인 땅에서 자란 '진흙버섯'은 모두 버리기도 했다". 모양.색깔 좋은 것에나 탐내는 초보자였다는 얘기.

하지만 마구 나눠줬던 바로 그 일이 남씨로 하여금 심마니의 길을 걷게 했다. 이웃들이 먹고는 약효를 알려줬던 것. 고질적인 변비를 앓던 이웃집 아주머니,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친구는 "병이 다 나았다"고 했고, 인근 살맹골에 사는 이상희(50)씨는 자궁암까지 이겨냈다고 알려 왔다는 것이다.

삼총사 중 한사람인 김씨는 본인이 약효를 체험한 뒤 동행으로 나섰다. 치질.위장병으로 고생하면서 수술을 5차례나 받았으나 이 버섯을 먹고서야 극복했다는 것. 권씨도 인척과 중풍 모친이 차도를 보이자 믿고 동참하기 시작했다.

상황버섯은 드디어 한많고 사연 많은 삼총사의 생활을 희망과 즐거움에 차게 바꿔 놓은 것 같았다. "전국을 다닙니다. 태백산에서는 정신없이 버섯만 찾다가 도시락을 잃어 종일 쫄쫄 굶었었지요. 눈 쌓인 오대산 화전터에서는 길을 잃어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 지리산에서는 눈보라에도 추운 줄 모르고 버섯 따기에 빠졌다가 발이 얼어 며칠을 고생했고요". 30~40년 전 화전민들이 살던 뽕밭 주변을 뒤져야 하기 때문에 산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것은 필수라고 했다.

이렇게 재미까지 누리며 이들이 지금까지 딴 양은 남씨가 40kg, 김씨가 28kg, 권씨가 20kg 정도라고 했다. "부도로 살길이 막막했으나 이제는 '고소득자'가 돼 흩어진 가족들도 다시 모여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권씨의 말에 생기가 흐르고 있었다. 054)683-0504, 6068, 5430.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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