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해전 일본 오사카의 한 백화점에서 겪은 경험. 한창 붐비는 오후시간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일행 한 사람의 구두 뒷축에 문제가 생겼다. 구두수선소를 찾을 수 없어 부득이 부근에 있던 식품코너 점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손님과의 흥정도 중단하고 자신을 따라오라는 게 아닌가. 선뜻 앞장을 선 그녀는 한참을 돌아 백화점 구석의 수선소까지 직접 안내를 하고 미소를 남기며 돌아섰다. 미안할 정도의 친절이고, 오래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주었다.신학기를 맞은 대구시내 각 중고교 하학길의 시내버스 정류소. 한꺼번에 교문을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버스가 설 때 마다 먼저 타겠다고 아수라장이다. 애시당초 줄이라고는 없다. 그러니 서로 양보도 없다. 버스를 놓친 학생들은 또 택시를 잡는다고 이리저리 난리다. 어느 학교앞이고 매일 벌어지는 풍경이다.
대구는 줄 안서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한창 질서 교육을 받을 학생들이 저 모양이니 다른 곳은 굳이 말을 아니해도 알조다. 가까운 대전만 가보라. 그곳 시내버스 정류소에는 단 두명이라도 줄을 서고 있으니까.
##낯 부끄러운 대구의 시민의식
그 뿐인가. 대구의 불친절 또한 알아줄 정도다. 그 실증적 사례가 지난해 월드컵 개최 10개도시의 시민 친절지수 조사다. 이 조사(20개 항목)에서 대구는 전국 최하위로 나타났다. 대구의 시민의식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평가로 나오는 지 정말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대구는 가망이 없는 도시인가. 그냥 이대로 굴러가고 말 일인가. 대구가 생기고 처음으로 굵직한 국제행사를 연달아 잡아놓고 있는 지금, 시민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다.
##잇단 국제행사 변화의 계기로
사실 오늘의 일본이 저렇게 친절하고 그게 곧 경쟁력으로 위력을 떨치는 것도 그들 나름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일본은 동경올림픽(1964년) 1년전, 지금이야말로 2차대전의 패배를 딛고 재기할 절호의 찬스라는 국민적 일치(컨센서스)를 바탕으로 각계가 참여한 대대적인 친절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일본의 친절은 저절로 나온 게 아니라 전국적 민간조직 운동을 통해 철저하게 만들어져 국민성으로까지 체화(體化)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사례는 싱가포르에도 있고 프랑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친절운동 같은 캠페인을 삐딱하게만 볼 게 아니라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인 것이다.
##'글로벌 시대의 대구'만들자
대구의 지성들은 현재 대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위기감은 '혁신의 노력' 부족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대구 경제의 침체가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고 시민사회에 활력이 사라지는 것은 개방화 세계화 정보화 같은 큰 시대변혁의 흐름에 등져 왔기 때문이란 것이다(최영호 경북대 교수). 흔히 대구의 기질로 대변하는 보수성이 그만큼 변화에는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루가 무섭게 변화하는 속도의 시대에도 여전히 그 보수성의 섬에 갇혀 지낸다면 대구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숙고해 볼 때를 맞고 있는 것이다.
250만이면 국제도시다. 그런데도 인구만 그렇지 살아가는 스타일은 촌락 형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얘기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서도 세계시민(World Citizenry)의 일원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촌락의 빗장들을 일제히 풀고 글로벌 시대의 눈높이에 대구를 올려 놓는 노력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대구가 세계시민의 대열에 합류하느냐 국제적 낙오자로 뒤처지느냐는 순전히 시민 각자의 선택이다.
그 기회가 오는 5월의 JCI 아.태대회와 대륙간컵 축구대회를 시작으로 내년 월드컵축구대회와 국제섬유박람회 그리고 2003년의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로 이어지는 잇단 국제행사다. JCI대회는 22개국에서 청년 상공인 6천명이 6일동안, 세계 최대 이벤트인 월드컵대회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지구촌의 열기가, 전세계 대학인의 스포츠축제인 U대회는 170여개국에서 1만1천명이 11일동안 대구를 달구어 놓는다고 한다. 대구를 세계에 알리는 이른바 도시마케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 길은 세계시민의 공덕심(公德心)을 갖춘 격조있는 도시로의 탈바꿈이다. 이를 위해 각계가 참여하는 비대위라도 서둘러 구성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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