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인재가 그렇게도 없나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이 기획예산처 장관시절 어느 라디오 대담프로에서 사회자로부터 "지금 국민들이 개혁피로에 지쳐있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진 장관은 "개혁이란 그 효과가 한참뒤에 서서히 나타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일시적 고통을 국민들이 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작금 국정파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현정권의 각종 개혁이 과연 그의 지적대로 돼가고 있는가. 효과는커녕 개혁의 근본이 흔들리면서 국민들은 과연 이 정권을 믿고 기다려야할지, 다른 특단의 조치를 개개인이 스스로 강구해야 될지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그 전도가 캄캄하다. 의료개혁으로 추진된 의약분업은 재정파탄에 직면해 있고 교육개혁은 교육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앞에 국민들은 그야말로 갈피를 못잡고 절망하고 있다. 실패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될지 그 대책조차 못내놓고 있는 의약분업의 허구성에 직면한 후 대통령까지 장관이 자신있다고 한걸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는 고백을 듣고 국민들은 이러다가 정말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있다. 최근엔 최악의 경제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그래도 이 나라에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 있는데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 실낱같은 기대까지 허물어져 버렸다. 국정의 어느 한 분야라도 성한곳이 없다. 심지어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사건에 대처하는 힘없는 정부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느냐는 장탄식뿐이다.

비틀거리는 행정 난마처럼 꼬인 정책

더더욱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하게 하는건 각 부처마다 내놓은 대책이라는게 결국 돈문제에 귀결되면서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방법이 고작이라는데 있다. 결국 국가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책이라는게 현실적으로 강구될 수 없는 상황인건 사실이지만 이 나라에 이렇게 지혜가 없고 인재가 없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럴바에야 왜 그렇게나 많은 개혁을 애초부터 추진했는지 원망스럽다. 개혁에 반대하면 그건 곧 대역죄인이나 되는듯 몰아친 그 강성의 장본인들은 어느새 다 숨어 버리고 없다. 아니 이젠 내탓이 아니라고 발뺌하느라 부처간에 말싸움질하는 소리밖에 없다. 심지어 여당국회의원들까지 정부에 대고 행정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다그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국민의 이름을 들먹이며 탓하는 소리뿐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권에서도 정책실패와 혼선이 이렇게 난마처럼 꼬이지는 않았다. 물론 종국엔 '10.26' '5.18', '대형 부정축재' 'IMF사태'등을 초래하는 실패로 결국 정권을 차기로 내줬지만 적어도 재임시절 정책수립이나 그 집행에 따른 행정시스템만은 이렇게 비틀거리지는 않았다. 개중엔 깔끔한 마무리도 많았다. 그 토대가 오늘의 기반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준비된 대통령'이 이끄는 이 정권의 개혁정책은 하나같이 왜 이리 막히고 빗나가면서 불과 3년만에 실패작으로 전락, 우왕좌왕, 쩔쩔매고 있는가

잘못된 인사 정책이 국정파탄 초래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인사정책의 실패가 가장 근원적 요인이 아닐까 싶다. 국가요직이 불과 3년사이 별 검증도 없이 '특정인맥'으로 바꿔치기한 전례는 아마 드물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반드시 그 틀은 유지돼야만 설사 '장(長)'이 바뀌어도 업무가 지리멸렬되는 일은 없는 법이다. 미국은 법(法)이 그걸 대신하고 일본은 '동경제대 인맥'이 국가 행정의 기반을 유지하고 있기땜에 자민당 독재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근 40년 유지돼온 국가 행정조직기반을 지역 차별의 시정(是正)이란 명분아래 불과 3년새 그 틀을 허물어 버릴 정도로 뒤흔들었으니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창출될 수 있겠는가. 게다가 IMF 이후라 경쟁력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했던 터에 '동지'라는 이유로, '선거'라는 필요에 의해, '공동여당'의 배려로, 떡 가르듯 대거 낙하시켜버린 인사정책은 애시당초 실패를 잉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인력이 절실한 공기업에, 또는 장.차관 자리에 하등 무관한 정치인이나 '지역인맥'으로 적당히 채워넣는 '인사정책'이 성공할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놓고 고위직의 지역별 안배 운운(云云)하면서 계속 '숫자놀음'으로 눈속임 한다면 남은 2년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수가 없다. 이 현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이런 인사정책의 폐해조차 아직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로 이 정권에서 더이상 국민이 기대할 게 없다. '인사가 만사'라고 입으로만 외칠 일이 아니다. 국운이 달린 문제다. 왜 하필 구시대정권의 폐습만 더욱 발전시켜 답습하려 하는가.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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