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늘어나는 어린이 '분리불안'

김경영(34·대구시 북구 침산동)씨의 딸 하경(5)이는 5개월째 어린이집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별다른 이유도 없다. 처음엔 '아이들이 때려서…', '친구가 째려봐서…'등 별의별 핑계를 댔지만 확인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지난 해 4월부터 6개월간 별탈없이 잘 다니던 하경이는 지난해 10월 "어린이 집 가기가 싫다"며 등원 거부 선언을 했다. 하경의 아빠 김씨와 엄마는 아이를 달래보고 때론 윽박질러 보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고 하경이가 친구와 잘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 성격'은 아니다. 하경이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소꼽놀이도 잘하고 이야기도 잘하는 사교적인 아이다. 엄마와 함께 하는 '어린이 구연동화'나 '어린이 뮤지컬'에 가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하경이는 유독 조직생활에만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끝에 김씨 부부는 하경이를 어린이집에 데리고 갔다. 하경이는 원장 선생님 앞에서 "내일부터 다시 어린이집에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나서는 순간 엄마에게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며 금방 말을 바꿨다. 이후 지금까지 하경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이승경(41·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는 몇해전 외할머니 댁에 맡겨둔 딸 희지(3)를 데려와 집 인근 어린이 시설에 맡겼는데 그때부터 희지는 심한 불안증세를 보였다. 희지는 "배가 아프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등 핑계로 놀이방 가기를 거부, 처음엔 직장에 다니는 엄마손에 이끌려 억지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맡겨졌다. 희지는 놀이방에 맡겨진 지 며칠만에 물건에 욕심을 내는가 하면 자주 짜증을 부리고 이마를 땅바닥에 찧는 '자학증세'를 보이는 등 극도의 정서불안을 보였다. 이씨부부는 결국 두 손 들고 말았고 희지는 외할머니댁에 돌아가 안정을 찾은 후 가정집같은 분위기의 작은 놀이방에 다시 가게됐다. 이후 희지는 의외로 쉽게 적응해 놀이방에 가지 않는 일요일에도 놀이방에 가고싶다며 부모를 졸라댈 정도가 됐다.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 증가 등 우리사회가 고도산업화 사회의 가족구조형태로 바뀌면서 앞의 사례처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놀이방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적지않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처음 보육시설에 맡겼을때 한동안 가기를 거부한 경험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거부기간이 장기화되거나 노골적인 거부 반응을 보일 경우엔 원인을 잘 살펴보고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아동 전문가들의 충고다보육시설 등원을 거부하는 증세를 아동심리학적 용어로는 '격리불안' 또는 '분리불안'이라고 말한다. 즉 엄마품에서 떨어지는 사실에 대해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는 장애를 말한다. 이러한 장애가 심할 경우 학교가기를 거부하는 '학교 공포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분리불안'의 원인은 여러가지이지만 대개 부모의 '과잉보호'나 일관성이 결여된 자녀생활지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아기때부터 엄마품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겪게 되고 또 장시간 부모없이 공포에 떤 경험이 있을 경우 '분리불안'의 후유증이 오래 갈 수 있다. 또 너무 극성스럽게 자녀를 보호하다 때론 무관심으로 대하는 등 부모의 양육태도가 변덕스럽거나 자녀 돌보는 사람이 바뀌는 급작스런 환경변화에서도 이러한 '분리불안'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보육시설 자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육지도교사 수가 너무 적어 아동 보호 환경이 열악한 시설이거나 대형 시설의 경우 어린이들의 '분리불안'증세는 심해지게 된다. 이럴경우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분위기의 시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류승완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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