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늙기도 서러운데 자식들 마저...

이모(75)할머니는 지난 해 말 양로원으로 들어갔다. 이따끔씩 찾아오던 딸이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된 할머니가 받는 월 20만원 가량을 수시로 챙겨가고 전세금마저 빼내갔기 때문이다. 복지시설에서 주는 도시락 1개로 세끼를 해결하며 힘겹게 살면서 심한 피부병에도 병원 한번 못가던 할머니였다.

외환위기 이후 중장년층의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 노부모 부양능력이 떨어진 데다 '효사상'마저 급격히 퇴색한 사회풍조로 부양기피를 넘어서 갖가지 노인학대까지 번지고 있다.

12일 점심시간 무렵 대구 달성공원 앞길. 오랜만에 2천원짜리 자장면을 점심으로 먹어봤다는 박모(88.대구시 달서구)할아버지는 자신의 소원을 '양로원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집에 산다는 박 할아버지는 달성공원까지 걸어와 저녁무렵까지 지내다 '가시방석'같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하루 일과다. 4년전부터 실직상태인 아들, 툭하면 '딸네집으로 가라'고 쏘아붙이는 며느리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서다.

"아들.딸 다 있는데 모두 형편이 안 좋아. 양로원에 갈려고 해도 돈 안주면 못들어간 데. 버스비가 없어 여기까지 걸어와야 하는데 그렇다고 집에 있을 수도 없어".

대구 햇빛재가노인복지센터 김지숙(30.여)사회복지사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중에는 언어 폭력외에 손찌검을 당했다는 상담도 많지만 '남부끄럽다'는 의식때문에 사건화하는 사례는 극소수"라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에 대한 가장 일반적 학대형태는 '의도적인 무관심'이며 혼자 사는 노인들은 자녀들의 방문이 끊기는데서 오는 '외로움'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노인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13일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이를 다루는 토론회가 대덕노인복지회관에서 열렸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충선(대구대 가정복지학과)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전국 6대 도시 65세 이상 노인들을 조사한 결과, 8.2%의 노인들이 자녀 및 가족원으로부터 정서적·경제적·신체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며 "이는 자식 험담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 노년층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매우 높은 수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어 "학대경험자 대다수가 '거의 매일' 학대를 받는다고 응답해, 학대행위가 일상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또 "학대 경험자 중 62.8%가 끝까지 참거나 일방적으로 당한다고 대답하는 등 '빨리 죽고 싶다'는 반응을 나타냈다"며 "외환위기 이후 양적으로 증가한 노인학대행위에 대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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