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호미곶과 구룡포항. 한반도의 동쪽 끄트머리. 그곳에 가면 몸과 마음을 바다와 하늘의 푸르름에 흠뻑 물들일 수 있다. 완연한 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유채꽃 단지는 여기가 제주도 어디쯤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태평양을 향해 가슴을 열고 가슴 가득 삶의 활력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호미(虎尾)곶 광장. 우리 기억속에 새 천년을 맞는 장엄한 해맞이 명소로 남아 있는 곳. 그러나 지금은 검푸른 동해바다와 노란 유채꽃, 풍력발전기, 새단장을 마친 장기곶 등대박물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우리를 맞는다. '호랑이 꼬리 도로'를 일주하는 925번 지방도로 또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 꼬불꼬불한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보면 동해바다가 눈이 시리도록 들어온다.
동해 근해어업의 전진기지인 구룡포항에는 어구를 손질하는 어부들과 경매 끝난 어물을 좌판에 올려 놓고 손님을 부르는 억센 아지매의 구수한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가족 나들이라면 조금 일찍 출발하여 구룡포 오징어·잡어 활어위판장을 둘러 보는 것도 자녀들에게는 산교육 기회가 된다.
"자네들도 한번 해 봐".
70대 노부부가 보기만 해도 아찔한 비탈길을 타고 바다로 내려가며 기자 일행에게 권유한다.
"바다풀 톳도 뜯고 제삿상에 올릴 고기도 잡을 수 있어".
어깨에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걸치고 손에는 긴 대나무 낚싯대가 들려 있다"오늘은 이곳에서 잡아봐야지…".
끝까지 지켜보진 못했지만 그들 노부부는 그날 많은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벚꽃이 흐드러진 경주를 지나 포항으로 내달린다. 형산교를 지나면서 철강공단의 굴뚝을 뒤로 하고 '구룡포 감포' 표지판을 안내삼아 15분쯤 달리면 먼저 바다냄새부터 난다.
갈매기떼와 푸른 바다가 유혹하지만 몇 번이나 이어지는 급커브 표지판에 운전대를 꽉 잡아야 한다. 내려가고 올라가기를 반복, 구룡포까지 30km가 지루하지 않다. 논엔 못자리를 손질하는 농부의 손길이 바빠 보인다. 갯바위 낚시꾼이 있는 포구에서 20여분을 더 달리면 호미곶 광장이다.
광장 진입로에는 풍력발전기가 먼저 맞아 준다. 곧이어 작년부터 씨를 뿌려 올해 만개한 유채꽃 단지가 시야를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이게 유채꽃이래. 그런데 왜 이리 많이 밟혔지".
딸과 함께 대구서 왔다는 30대 아줌마가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어린이 키만큼 자란 유채꽃 사이 미로처럼 난 산책로를 따라 해변쪽으로 걷다보면 바다냄새가 섞인 유채꽃 향기가 코를 진동한다.
호미곶 광장을 향해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상생(相生)의 손'이 광장에 세워진 또 다른 한손과 마주 보고 있다. 해맞이때의 엄숙함과는 달리 한결 여유롭게 관광객을 맞이한다. 광장 옆 바닷가에 있는 하얀 등대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장기곶 등대이다.
돌아오는 길은 구룡포항으로 잡는다. 싱싱한 오징어와 시원한 복어국을 맛보는 즐거움을 빠뜨릴 수 없기 때문. 물론 풍광은 하루중 아침이 가장 좋다. 곧장 구룡포로 왔다면 활어 위판장을 꼭 둘러볼 만 하다. 중매인과 어부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오징어 활어 위판은 오전 6시부터, 잡어는 7시부터 시작해 10시쯤이면 끝난다. 이틀동안 조업한 오징어를 위판장에 올려놓는 101정화호 선장 김철상(61)씨는 "이제 오징어잡이가 시작이다"며 "그러나 위판가격이 기름 등 경비에도 못 미친다"며 씁스레 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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