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감사원장 방문 '경주 경마장'주민들

경마장 부지로 지정됐다가 지금은 문화재 발굴이 한창인 경주시 보덕동 손곡마을 및 천북면 물천리 일대 29만여평. 문화재위원회가 보존 결정을 내린 지난 2월8일 이후 손곡마을 도로변에 내걸린 수십개의 조기(弔旗)가 13일에도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 현장을 이종남 감사원장이 이날 찾았다. 올해를 '환경·문화 감사 원년'으로 선언, 감사원장으로서는 처음 발굴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이원장은 앞서 경북관광개발공사 권순 사장으로부터 역내 관광개발 현황을 브리핑 받은 후, 문화재 연구소 홍성빈 소장 안내로 경주시내 발굴 현장도 살폈다.

"검사 시절이던 35년 전에 경주에 근무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는 경주가 그야말로 자연상태였는데 이제 아파트까지 들어서서 안타깝습니다". 그는 역시 경마장보다는 자연상태의 경주, 문화유적지로서의 경주를 더 가슴에 담고 있는 듯했다. "문화·관광이 더 고부가 산업이라 생각합니다. 문화재를 잘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찾아 온 게 누구이건 귀찮다는 표정. 경마장이 사적지가 되고 하는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물려 온 문전옥답과 선조 유택까지 내놔야 하게 된 무력감에 어쩔 줄 모르는듯 했다. 박종동(72) 할아버지는 "이제 낡은 집조차 고치지 못하게 되지 않았느냐"고 했고, 김중배(54)씨는 "주민 피해를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숙동(52)씨는 "경마장이 건설된다고 떼돈 버는 것도 아닌데 지난 10년 동안 주민들은 정치인들에 의해 우롱만 당했다"고 했다.

경마장 건설 주장도 지쳐 있었고, 국회의원·시장·지방의원·시민대표 등이 무더기 삭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주민의 상처를 다스리는 일인듯 했다. 최경일(60)씨는 "여기저기를 파 뒤집어 놔 머잖아 장마철이 닥치면 산사태가 마을을 덮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병문(63)씨는 "마을과 논밭이 폐허가 됐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뭐 있겠느냐"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하는 길일까? 이종남 감사원장은 "정부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주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중재에 나서겠다"고 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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