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이래 선각자들은 일제(日帝)에 빼앗긴 이 땅을 찾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호응해서 전국 곳곳에서 뜻 있는 유지들이 땅을 희사했고 갑남을녀 마을 사람들이 벽돌을 날라 땀흘리며 학교를 지었다.
마을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늑한 자리는 으레 학교 차지였다. 지금도 산골의 50~60년 넘은 초등학교 분교나 폐교에 들를때면 항상 "마을에서는 제일 명당에 자리잡았구나"싶은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비록 헐벗고 굶주렸지만 지성껏 학교 터를 잡고 그곳에서 이 나라 국운을 회복할 인재들이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요즘 이만큼이라도 자리잡아 나라 이름을 떨치는 것도 결국은 아늑한 명당자리에 학교부터 지었던 겨레의 정성이 결실을 본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우리의 학교 터 잡는 모습은 참 한심스럽다. 전국적으로 54개소 초.중.고교에 고압선이 있고 LPG저장소나 석유저장소가 있는 곳이 100여곳, 교통 위험 지역에 있는 학교도 1천500여곳이나 된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아파트 짓고 러브호텔 짓고 하다보니 정작 초등학교는 공동묘지 옆으로 밀려나 버렸다. 대구의 어느 지역에서 상가가 정화구역에 포함돼 장사에 지장받는다며 학교건설을 반대하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세태다.
그 결과 교육부는 앞으로 운동장 없는 '빌딩'형, 12~18학급 수준의 '미니'에다 같은 부지에 중.고교를 함께 건립하는 '복합'형 학교를 건립키로 했다는 것이고 보면 참 답답하다. 선진국 학교들처럼 잔디 깔린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지는 못할 망정 흙먼지 나는 운동장마저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고 '빌딩'형…운운하다니 이래도 되는 것일까. 옛 어른들처럼 남향 바른 양지 받이에 방위잡아 학교를 지을 만큼 요즘 세태가 한가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상가 짓고 아파트 짓고 러브호텔 짓고 남은 자투리 몹쓸 땅에 학교를 짓는 그런 심보로 이 땅의 아들, 딸들을 어떻게 길러내겠다고 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50년전에 지성껏 지은 그 학교에서 나온 인재들이 이 나라를 이만큼이나마 이끌었다면 지금 이런 천덕꾸러기로 기른 학생들이 50년후 이땅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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