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시외버스 운전 31년 김재연씨

시외버스가 우리 삶에서 한 발짝씩 멀어지고 있다. 구불구불한 국도가 반듯한 아스팔트 포도로 변하고 자가용 승용차가 늘어나면서 고향과 대처를 이어주던 정겨운 시외버스가 우리네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김재연(58.대구시 동구 신천4동)씨. 31년째 시외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다. 화물차 조수로 시작해 지난 70년부터 시외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19일 단위로 매일 운행코스가 바뀌지만 주로 대구 북부정류장에서 의성, 안동, 진보, 영양, 멀리 강원도 태백까지 운행한다. 이용승객이 턱없이 적어진 탓에 그의 버스는 치열한 생활현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어딘지 모르게 영화 촬영세트장 같다.

"70, 80년대까지는, 아니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좋았었지. 손님이 너무 많아 다 못 태우고 떠나기 일쑤였거든". 요즘엔 승객 한 명 없이 텅텅 빈 차로 태백까지 달려야할 때도 적지않다고 푸념했다.

◈10년새 이용객 66% 감소

김씨의 푸념이 아니더라도 시외버스 이용객 감소는 눈에 띌 만큼 확연하다. 88년 연 이용객 2천만명에 육박했던 대구 동부, 남부, 북부 시외버스 정류장 이용 승객은 98년엔 660만여명으로 줄었다. 10년 동안 66%나 감소한 것이다. 승객 감소는 계속 이어져 99년 529만명, 2000년엔 500만명을 겨우 넘겼다. 90년 1천387대였던 시외버스도 2001년 현재 1천88대로 줄었다. 승객감소세에 비해 버스의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작다. 그만큼 승객이 없는 빈 차가 늘어난 셈. 그렇다고 하루 2,3번 오지와 도시를 이어주는 버스 노선을 없앨 수는 없다.

"겨울에는 지독하게 춥고, 여름에는 무지 더웠지. 80년대 들어와서야 에어컨과 히터가 달린 차가 나왔어". 김씨는 멀미를 일으키던 옛날 시외버스 특유의 냄새는 먼지를 막으려 나무 바닥에 뿌렸던 경유 때문이라고 했다.

◈조수.차장 향수 추억속으로

70, 80년대의 버스는 조수, 차장은 물론이고 때로는 차주까지 함께 타고 다녔다. 콩나물시루처럼 미어터지도록 승객을 태운 버스는 걸핏하면 고장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지금은 하루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성능 좋은 버스인데도 사람냄새가 그리울 정도다.

"승객이라야 7, 8명이 고작이지. 노인이나 학생이 대부분이야.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드물고 젊은 사람은 모두 자기 차 몰고 다녀…". 커다란 옷가지 보따리와 대나무 광주리를 이고 시골 5일장을 떠돌던 장사꾼들은 모두 사라졌다.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으니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없다. 명절을 앞둔 귀성객에게 아는 시외버스 기사가 있다는 사실이 큰 '빽'이던 시절이 언제이던가.

◈비용 싸 나홀로 여행 매력

사실 시외버스의 숨은 매력은 적지않다. 나홀로 여행엔 우선 비용이 적게 든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늘 좌석이 있다. '당일 당차 원칙'이지만 오늘 산 표로 내일 타더라도 나무라지 않는다. 조느라 내려야 할 곳을 놓치면 적당한 곳에 내려 달라고 기사에게 졸라 볼 수도 있다.

지독한 경유냄새와 조악한 의자 탓에 멀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날의 시외버스. 그 시외버스가 때로 그리워지는 것은 황급히 자전거를 세우고 손 흔들어주던 국도변 까까머리 중학생들의 모습이 우리네 추억 한 켠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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