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황이 불신을 부르나

장기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 전반에 불신풍조가 깊어지고 있다.사이버공간에서는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악성루머가 춤추고 있고 부부사이에 친자확인검사가 많아졌으며,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잇따르면서 인터넷 사이트를 탈퇴하는 네티즌들이 늘고 있다.

경북대병원에는 지난해까지만해도 법원 촉탁에 의한 친자확인검사가 드물었으나 올들어서는 한달 2, 3건에 이르고 있다. 이 병원 임상병리과 관계자는 "70여만원이 드는 검사를 받고 싶다는 전화가 하루에 3건 이상 걸려 온다"고 말했다. 영남대병원 및 동산병원도 친자확인검사를 한달에 1건 이상 하고 있다.

얼마전 늦둥이를 본 이모(36.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아이가 자신을 전혀 닮지 않았다는 고민끝에 병원에 친자확인검사를 의뢰했다. 이씨는 "지난해부터 인터넷 채팅에 빠져 있는 아내가 요즘엔 새벽에 귀가하는 일도 잦고 채팅 때문에 불륜까지 저지른다는 얘기를 듣고 친자확인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정보유출사건이 속출하자 사이트를 탈퇴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주모(19.대구시 서구 평리동)양은 지난해 회원으로 가입했던 23개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최근 한곳만 제외하고 전부 탈퇴했다. 주양은 "인터넷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가 새나가 나쁜 곳에 이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탈퇴를 결심했다"며 "꼭 가입해야 할 경우엔 주민등록번호나 주소는 가급적 입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에 10대 해커 2명이 신용카드 결제를 승인하는 업체 홈페이지에 침입, 회원 47만명의 신용카드 번호와 개인정보를 훔친 뒤 팔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 햄버거를 사 먹은 송모(27.여)씨는 다음날 회사동료로부터 '끔찍한' 얘기를 들었다. 송씨는 "햄버거 가격이 싼 이유가 광우병 소고기를 썼기 때문이란 소문을 듣고 가게에 전화를 걸어 사실인지 물어봤다"며 "사실이 아니란 대답을 듣고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제계에서는 '제2의 IMF설'에서부터 '테헤란밸리 도산괴담', '지역 관급공사에 대한 특정지역 업체 싹쓸이론', '주요업체에 대한 검찰내사설' 등 온갖 루머들이 난무하는 실정.

경찰은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악성루머들의 폐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이를 실시간 검색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며 다음달부터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에 대해 집중수사할 방침이다.

계명대 이진우 교수(철학)는 "최근의 루머난무 현상은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성이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동산병원 정철호 박사(정신과)는 "경제난으로 삶이 고달파지면서 사회전반에 불신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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