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그 아이들은…

지구라는 이름의 푸른 별. 40년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우주에서 바라보았을때 겨우 레코드판 10장 정도 크기더라는 이 지구에선 단 일초도 쉴 새 없이 온갖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군용기 충돌로 스무날이 가깝도록 기싸움을 벌이고,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여전히 으르렁거리고, 유럽에선 광우병과 구제역으로 소와 양들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인도네시아는 부패한 대통령으로 인해 온 나라가 죽끓듯하고,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은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한국과 일본은 왜곡 역사교과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노예로 전락한 '神의 선물'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측량할 길 없는 넓이와 깊이의 우주공간에서 아주 작은 별에 지나지 않는 이 지구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광경이 그야말로 '달팽이 뿔 위의 다툼'처럼 느껴져서 우습기조차 하다. 아니, 하염없이 서글프다. 이 좁은 뿔 위의 세계에서 진정 사랑과 평화란 사치일 뿐인가?

지금, 이 순간도 가증스런 한 사건이 우리를 분노케 한다. 제3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어린이 인신매매.

3주전, 노예로 팔린 어린이 약 250명을 태우고 아프리카 베냉을 떠난 배 한 척의 종적이 오리무중이다. 당초 어린이 노예선으로 알려졌던 MV 에티레노호(號)의 승선 어린이들은 부모를 동반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250명 아이들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 관계자는 인신매매범들이 증거인멸을 위해 외딴 곳에 아이들을 버렸거나 바다에 수장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학대와 노동에 신음

이번 일로 표면화됐지만 아동 밀매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성행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커들이 가난한 부모들에게 부유한 집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겠다며 속여 푼돈을 쥐어주고 10살 내외의 어린이들을 데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납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난 97년에도 베냉정부는 400여명의 어린이 노예선을 발견한 적이 있고, 토고에선 매년 수백명의 소녀들이 노예로 밀매되고 있다. 이들 아동들은 커피농장이나 가정부,성적 노리개 등으로 일체의 임금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혹사당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아동기금 자료에 따르면 매년 무려 20여만명의 어린이들이 중앙아프리카 및 서부아프리카의 인신매매시장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한다.

그런가하면 이집트에선 400만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극도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농업과 기계,철강,화학,건설 등 위험 직종에서 일하고 있으며 약물중독과 화상,구타,성적학대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지난 날, 굶주리는 가족들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기 위해, 동생들의 학비마련을 위해 청춘의 고운 꿈을 접고 공장에서 밤낮을 잊고 미싱을 돌리던 수많은 '누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우리들이어선지 이들 현대판 어린이 노예들의 참상이 더욱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기성세대가 청지기 역할 맡아야

지난날 '누이들'의 눈물과 땀의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 매춘이 한국인들의 투자 유치에 한몫한다는 외신은 우리를 쥐구멍에라도 숨고싶도록 부끄럽게 만든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자카르타 등 인도네시아 4개 지역을 대상으로 어린이 노동실태를 조사한 결과 아동 매춘이 외국인 사업가들을 인도네시아로 끌어들이는데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으며 주고객이 한국과 싱가포르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신(神)의 선물이다.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날뿐 부모의 소유물은 아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돌보고 가꾸는 청지기역할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꽃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지만,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오스카 와일드)이다. 우리에게 과연 그 가장 아름다운 꽃을 짓뭉갤 권리가 있을까.

'여기 어린 눈이 있어 당신을 지켜본다./밤이나 낮이나 당신을 보고 있다./여기 어린 귀가 있어/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따라하고 싶어한다./그리고 여기 당신처럼 될 날을 꿈꾸는/어린 소년이 있다.'(작자 미상의 시 '어린 눈이 당신을 보고 있다'에서).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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