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빈공간이 있는 삶

ㄱ신부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로 들어서지 않고 국도로 길을 잡았다. 라일락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면 좋지만 안되면 야산에 진달래 피어 있는 거라도 보고 호수를 만나면 잠시 물 구경도 하면서 가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저녁 무렵 비산비야의 낮은 구릉 위에 열 지어 선 나무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교차하고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섬세한 풍경은 발걸음을 붙잡곤 했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언덕위에 줄지어선 나무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건 그 나무들뒤에 말없이 배경이 되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들의 세세한 곡선과 균형, 멋들어지게 휘어진 모습으로 자라 온 나무들의 지난 생과 그것들의 무난한 어울림, 자잘한 잎새의 떨림과 흔들림까지 빠짐없이 보여주는 빈 허공이 없다면 나무들은 그렇게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빽빽한 숲속에서는 그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어찌보면 허공 때문이다. 나무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려면 허공까지 포함해서 보아야 한다. 허공, 비어 있는 여백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이루는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야말로 참이라고 했다. 허공이 곧 하느님이라고 했다. 형태도 모양도 없이 계시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했다. 염화미소를 바르게 깨달으려면 꽃만이 아니라 꽃 밖의 허공을 보라는 것이다. 꽃과 허공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곡선을 보고도 꽃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꽃을 있게 하는 것은 허공이라는 것이다.

조각작품도 마찬가지다. 조각의 실공간을 뒤에서 받쳐주는 빈 공간까지 합쳐서 우리는 그 작품을 감상한다. 그것을 네거티브 스페이스, 허공간이라 한다. 허공간 그 자체가 조각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그 허공간이 막혀 있다. 제대로 된 자기 자리를 잡아 서 있는 것 같지 않다. 거대한 빌딩에 가려져서 왜소해보이거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어딘가 동떨어진 모습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조각작품의 뒤를 받쳐주는 여백을 만날 수 없어서 꽉막힌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다보탑의 아름다움은 탑의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다. 탑 뒤의 나무그늘과 그너머 푸른 하늘까지 포함해서 다보탑인 것이다. 절 집의 아름다움이 건축 하나만 똑 떼어내서 아름답다 하지 않는다. 추녀까지 내려가는 비스듬한 사선과 뒷산의 능선이 조화를 이룬 모습까지 포함해서 아름답다고 한다.

사람도 여백이 있는 사람이 인간답게 느껴진다. 빈틈이 없고 매사에 완벽하며 늘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사람보다는 어딘가 한 군데는 빈 여백을 지니고 있는 듯해 보이는 사람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뒤에 언제나 든든한 힘과 막강한 무엇이 꽉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보다는 텅 비어 있는 허공이 배경이 되어 있는 사람이 인간다운 매력을 준다.

여백이 있는 풍경이 아름답듯 여백을 지닌 사람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욕심을 털어 버린 모습으로 허공을 등지고 서 있는 사람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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