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촌 상권 사양길

국제화가 가난한 나라의 목을 죄는 사이, '전국화'는 농촌의 상인들까지 못살게 만들고 있다. 교통이 발달한 뒤 생활권이 넓어지자 어지간하면 뭐든 대도시로 사러 나가는데다 대도시 생산품은 품목이 겹치는 소지역 생산품의 경쟁력을 앗아가고 있다. 드디어 인터넷까지 나오자 그걸 통해 상품을 사는 사람이 늘어 또 한번 강펀치를 맞고 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지역 부자의 상징이었던 양조장과 방앗간(도정공장)이 거의 사라졌다.

청송읍에서 8년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한(48)씨는 "요즘은 주민들이 슈퍼나 대형 할인점에 가 전국 판매망을 가진 대구막걸리나 포천 쌀막걸리를 사 지역 막걸리가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했다. 이씨 양조장에서도 한때 하루 1천600~2천병을 생산했으나 최근 생산량은 300~400병이 고작이라는 것. 안동세무서 윤흥섭 개인관리 담당은 "80년때까지만 해도 경북 북부(안동.의성.군위.청송.영양)에 양조장이 200여 개 있었으나 지금은 52개만 남았고, 그나마 근근이 명맥을 유지한다"고 전했다. 청송군에는 30개 있던 것이 8개로 줄었고, 그 중에서도 2곳은 휴업 중이다.

정미소가 사양길로 접어 든 데는 개별 가정용 소형 도정기 보급이 큰 역할을 했다. 청송에는 1995년에만도 도정공장이 62개나 됐으나, 지난 5년 사이 46개가 폐업했다. 나머지 중에서도 8개는 작년 한해 동안 가동을 못했고, 그때문에 4곳은 최근 등록증을 반납했다. 청송군청 산업소득과 박지용씨는 "이제 5천만~6천만원이나 하는 색채 선별기를 갖추고 양곡 도매업을 겸해야 정미소가 겨우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면서 인터넷을 이용, 전자제품.옷 등을 사는 주민이 늘어 지역에 있던 소규모 상인들이 하나 둘씩 점포를 정리한 뒤 도시로 떠나고 있다.

예천읍 백전리 정현숙(28)씨는 "인터넷으로 사면 종류가 다양하고 물건 값도 싸다"고 했다. 게다가 택배망이 크게 발달, 농촌 가게들에 치명타를 날리고 있다는 것. 예천읍 남본리에서 10여년간 잡화상을 하던 권영욱(55)씨는 "홈쇼핑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며, "곧 점포를 정리하고 도시로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예천.권광남기자 kwonk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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