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17)여성들 처지에서 꽃을 주목한 꽃노래우리 꽃노래에는 벚꽃이 없다. 갖은 꽃들을 다 노래하지만 그래도 벚꽃만은 제쳐 두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언제부터 벚꽃축제가 드셌는지, 최근 며칠은 나라가 온통 벚꽃축제로 난리법석이다. 사쿠라 축제가 해마다 만발하면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못지 않게 우리 민족의 사쿠라 역사의식이 더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이 오랜 세월 불러온 우리 민요 '꽃노래'가 새삼 돋보인다.

이때저때가 어는 땐고/ 춘삼월 호시때다

우리 아버님 생신 때다/ 긔술 묵은 취중 끝에

노래 한쌍을 불러보자/ 무신 노래로 불러보꼬

꽃노래나 불러보자/ 묵기 좋다 참꽃트는 ….

울주군 김필련 할머니의 꽃노래 첫 대목이다. 꽃노래는 놀이 노래이다. 아버님 생신때와 같은 잔치마당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서 부른다. "한잔 묵고 두잔 묵고/ 취정 끝에 건건해여/ 불러봄세 불러봄세"와 같이, 노래 부르는 상황을 풀어놓은 다음에 참꽃부터 노래하기 시작한다. 꽃노래의 으뜸은 참꽃이다. '묵기 좋다 참꽃트는/ 이 등 저 등 다 패나고'라고 하여, 참꽃의 꽃분홍 아름다움이 주는 낭만적 정서보다 '먹기 좋다'는 실제적 기능과 이 산 저 산 가림 없이 두루 피는 흔함의 현실성에 참꽃을 으뜸으로 치고 있는 것이다.

떡떡 붙느나 연달래꽃튼/ 미뜨 ㅇ마중도 다 패나고

떡떡 붙느나 엉겅쿠꽃튼/ 밭두름논두름 다 패난다

부굴부굴 함박꽃튼/ 장독간마중도 다 패나고

너풀너풀 처매꽃튼/ 담장 안에도 다 패난다

누런누러나 호박꽃도/ 울타리마중 다 팼구나

참꽃은 먹는 꽃인데 반해 같은 진달래과인 연달래꽃 곧 산철쭉은 못 먹는 꽃이다. 꽃부리 안쪽에 자주빛 점이 있으며 꽃술에서 진득한 액이 묻어나는데, 여기에 독성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달래꽃 따 먹으면 문디이 된다'며 겁을 주곤 했다.

연달래꽃은 진액이 떡떡 붙지만 엉겅퀴꽃은 결각진 잎의 톱니가 가시처럼 되어 있어서 잘 들러붙는다. 보기에는 험상궂으나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어서 '가시나물'이라고도 한다. 연달래는 산소 뒤의 산에 주로 피므로 '묘등(墓嶝)마다' 핀다고 하고, 엉겅퀴는 풀밭이나 길가에 흔히 피기 때문에 '밭둑논둑에' 다 핀다고 하였다. 이처럼 꽃노래는 꽃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꽃이 피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노래한다. 따라서 함박꽃은 장독간마다 피고 호박꽃은 울타리마다 피었다고 한다.

삼색으로 피느나 꽃은/ 살려내는 환생화요

자색으로 피는 꽃은/ 수명장수 백년화요

청색으로 피느나 꽃은/ 요조숙녀 정결화요

백색으로 피는 꽃은/ 효자충신의 절개화요

경주 손순조 아주머니의 꽃노래다. 꽃의 색깔과 피는 모양에 따라 꽃의 기능과 상징을 노래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서양사람들은 꽃말이라 하여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 백합은 순결, 제비꽃은 겸손, 월계수는 영광 등으로 꽃의 특질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붙이고 있는데, 우리 꽃노래에도 꽃의 색깔에 따라 '환생'과 '장수', '정결', '절개' 등의 꽃말을 상징처럼 붙이고 있다. 유럽의 꽃말과 우리 꽃노래의 상징이 서로 다르지만 꽃의 일반적인 상징은 젊은 여성이다.

꽃이야 곱다마는/ 가지 높아서 못 꺾겠네

꺾든지 못 꺾든지/ 그 꽃이름이나 짚고나 가자

'그 꽃이름은 유정화라' 유정화는 정을 둔 꽃이란 뜻이다. 이 꽃은 실제 꽃이 아니라 짝사랑하는 여성이다. 분에 넘쳐서 사랑할 수는 없지만 이름이나 알아두자는 것인데, 혼자서 정을 주며 짝사랑하는 여성이니 꽃에 견주어 유정화라 이름한 것이다.

수렁 밑에 모매꽃은/ 해 보오까 수심이네

도랑가의 찔레꽃은/ 비리 오까 수심이네

담부랑에 앉은 쥐는/ 괭이 오까 수심이네

나무 끝에 앉은 새는/ 바람 불까 수심이네

동해겉이 고운 처이/ 백발오까 수심이네

밀양군 김도연 할머니가 부른 꽃노래이다. 소재로 보면 꽃노래인 것 같으나 내용으로 보면 수심가다. 모매꽃은 나팔꽃 모양의 작은 분홍색 꽃인데 해가 나서 시들어버릴까 걱정이고 도랑가의 찔레꽃은 진딧물이 올까 걱정이라는 말이다. 모매꽃도 나팔꽃처럼 쉽게 시들고 찔레는 연하고 맛이 달기 때문에 진딧물이 많이 덤빈다. 담벼랑의 쥐는 고양이 걱정, 나무 끝의 새는 바람 걱정하듯이, 동아(冬瓜)처럼 고운 처녀는 백발이 될까 걱정이다. 모매꽃이나 찔레꽃이 모두 처녀 자태와 처지를 비유한 것처럼 담벼랑의 쥐나 나무 끝의 새도 곱고 연약한 처녀의 불안한 처지를 비유한 것이다.

구월구월 국화꽃은/ 도연명이 차지하고

설중에 참매화는/ 고산처사 차지하고

화양에 목단화는/ 이공자에 놀아난다

밀양의 이복순 할머니가 앞의 노래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부른 노래이지만 처녀를 꽃에 비유하여 노래했다는 점에서 같다. 뿐만 아니라 처녀의 수심이 현실화되어 있다. 국화와 매화는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기상을 지닌 꽃이지만 한결같이 남성들의 차지라는 데에는 변함 없다. 목단은 아리따운 처녀를 상징하는 꽃이다. 목단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리따운 처녀라 하더라도 결국 귀공자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서릿발을 이기는 국화나 눈밭에서 피는 매화, 또는 꽃중의 꽃인 모란에 비길 만한 여성이라 하더라도 남성들의 차지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비판적으로 읊은 셈이다.

해당화도 좋지마는/ 향기 없어 무미하고

난초진초 애중컨만/ 허궁 속에 묻혔도다

아마도 좋은 꽃은/ 무궁화가 이 아닌가

담녕에 뿌리 박아/ 우정에 가지 벋어

인품에 눈이 돋아/ 천지 이는 따신 봄에

천타만류 꽃이 피어/ 금수강산 수논 닷이

상주 유우임 할머니의 꽃노래이다. 무궁화 노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금수강산에 수놓은 듯이' 삼천강토에 피었다고 노래했다. 중국의 '고금기'에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고 한 걸 보면, 이미 4세기부터 이 땅에는 무궁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도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꽃노래는 이러한 무궁화의 뿌리깊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쿠라 역사의식에서 벗어나자면 꽃을 보는 눈부터 바꾸어야 한다. 2천년 전통의 근화향 정신을 되살려야 사쿠라의 나라로 전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당대의 역사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엇길로 들어서고 있다. 독립군과 싸운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 기념관을 짓고자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쓸 계획이다. 게다가 민주세력이 50년만에 정권교체를 했다면서 군부정권의 핵심이었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중심으로, 이한동 총리, 김중권 민주당 대표, 김윤환 민국당 대표 등 한결같이 군부정권 실세들끼리 모여서 3당 정치공조를 과시하고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 군부세력의 면면을 보면 사쿠라 정권교체의 실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오죽했으면 빈배를 자처하는 김윤환마저 "돌다 보면 같이 모이게 되는 거지요"하며 멋쩍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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