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3(서기 1590)년 2월에 조정에서는 황윤길(黃允吉)을 통신사, 김성일(金盛一)을 부사, 허성과 차천로 등을 서장관으로 삼아서 일본에 들여보내기로 했다. 황윤길은 서인(西人), 김성일은 동인으로 처음부터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했다.
임금은 떠나는 사신들을 대궐로 불러 유시했다.
"조심하고 힘써서 잘 갔다가 돌아 오라. 그곳에 들어가서는 행동하는데 반드시 예(禮)로써 하되 조금이라도 업신여기는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체통을 존중하고 왕의 위령(威令)을 멀리 펴게 함이 이 한 번의 길에 달렸으니 그대들은 어김이 없도록 하라."
이들은 수행인 2백여 명을 거느리고 동래로 가서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동래로 떠난 것이 그 해 2월, 대마도에 도착한 것은 같은 해 가을이었다. 이들은 한달 동안 대마도에 머물며 대마 도주(島主)를 만나고 대판으로 가서 풍신수길의 국서를 받아서 다음 해 2월에 귀국했다. 출발해서 돌아오기까지 꼬박 한 해가 걸렸다.풍신수길이 쓴 국서는 이러했다.
"일본국의 관백, 수길은 조선국왕 합하(閤下)께 받들어 회답하오. 보낸 글은 향 피우고 읽기를 재삼 되풀이했소... 나와 대적이 된 자는 반드시 먼저 두려워 겁내고, 나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았소. 귀국이 먼저 달려와 입조하니 멀리 생각하여 가까운 근심을 없게 하려는 것이구려…. 국가가 막히고 산과 바다가 멀지만 한 번 뛰어 대명(大明)국에 바로 들어가서 삼국(三國)에 아름다운 이름을 나타내고 싶소. 그때 귀국이 교린(交隣)의 의리를 중히 여겨서 우리나라를 편들면 이웃 나라로서 맹약을 닦을 수 있을 것이오…"
문헌으로 짐작컨대 황윤길은 현실주의자, 김성일은 명분론자였던 모양으로 이 오만 무례한 국서를 받아 읽은 김성일은 국서를 밀어 놓으며 따졌다.
"바다가 안팎으로 끊겨 있으나 나라는 화이(華夷)의 구분이 분명한데 모욕과 오만하기가 어찌 이럴 수 있소? 우리는 죽으면 죽었지 이것을 가지고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소!"
김성일의 항의에 저들은 그 글에서 합(閤)자를 전(殿)자로, '받들어 회답한다'는 문구에서 봉(奉)자를 배(拜)자로 고쳐서 내주었다.
정사와 부사는 소속된 정파도 다르지만 실상을 보는 눈도 달랐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눈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은 처음부터 아예 다른 눈으로 보았던 것이다. 정사는 왜적이 침입할 조짐이 보인다 했고, 부사는 아무 일 없을 것이라 확언했다. 그때 조정은 동인들이 득세할 때여서 왜군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면 공연히 민심을 소란하게 할 염려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김성일은 그렇게 복명(復命)했을 것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서로 다른 눈을 갖고 가지 않았다면 정사와 부사의 복명이 이토록 다를 리 없다. 같은 시기에 포로로 잡혀와 있으면서 일본의 실상을 낱낱이 보고 그것을 사실 그대로 보고한 명나라 사람, 허의후(許儀後)라는 사람의 밀서를 보자. 그는 그 밀서에서 앞으로의 환난에 대한 대비책도 아울러 고했다.
"양경(兩京), 산동, 절강, 복건 일대의 해변은 밤낮으로 군사를 조련하고 전선을 많이 내어 방위해야만 만전을 기할 수 있습니다. 또 바닷가에 사는 백성이 적군을 돕는 접제(接濟)의 화를 엄금해야 합니다…. 왜적이 중국 땅을 밟으면 이를 재빨리 공격해서 날과 때를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통신사들은 전혀 다르게 보고 서로 다른 보고를 했다. 조정에서는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결정을 못 짓고 우물쭈물하다가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못하고 한 해를 헛된 입씨름으로 보내고 결국 임진년의 화를 당했다.
지금 북(北)과 일본을 보는 우리의 눈은 어떠한가. 낙관론과 비관론, 현실론과 명분론으로 우왕좌왕하는 꼴이 어쩌면 그 옛날과 그리도 똑 같은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데, 걱정이다.
한양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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