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언제 물통 신세 면하나

포항시 신광면 사정2리 김동화(78) 할머니는 불소가 정상 기준치의 20배나 넘게 들어 있다는 얘기를 시청 공무원으로부터 듣고도 간이상수도 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시청이 마을 앞에 물통을 설치하고, 대신 마시라며 시내 수돗물을 떠다 놔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10여년째 관절염 때문에 제대로 걷지를 못해. 멀리 나가 사는 아이들이 와서 떠다 주면 몰라도……."

◇주민들에게 맡기기엔 한계=20년 전 허리를 다쳤다는 박분달(80) 할머니도 매한가지였다. "물을 길어 올 힘도 없지만, 얼마나 더 살려고 아둥바둥하겠느냐"고 했다. 진롱금(74) 할머니는 몸이 성하지만 간이 상수도 물을 그냥 먹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냥 마셨는데 뭘. 집에서 100m도 넘게 떨어져 있는 시청 물통에서 물 가져 오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이 동네 박상만(40)씨는 "시청이 마을에 물통을 3개 설치해 놨으나 80여 가구 절반 가까이는 간이상수도 물을 그냥 쓴다"고 했다.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는 보건지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실 물은 집에서 가져 오지만, 라면 끓이거나 밥 할 때는 간이상수도 물을 그냥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광 보건지소 관계자가 말했다. 보건소까지 이럴 수밖에 없다니, 일반 주민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 같았다. 사정리.토성리 등 10개 마을 900여 가구 2천500여 주민 상당수가 시청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불소가 과다 함유된 간이상수도 물을 그대로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대책=신광면 일대는 그나마 시청에서 대체 식수를 떠다 놓기라도 하니 그나마 다행인 셈. 사정이 비슷한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마을엔 마실 물 공급 물통조차 없었다. 강동면 사무소 관계자는"작년말 문제를 알게 된 후 대체 수원을 개발 중에 있다"고만 했다.

포항 시의회의 태도는 더 한심해 보였다. 시청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 들여 올 당초 예산에 9천800만원의 대체수원 개발 설계비를 넣었으나 의원들은 전액 삭감해 버렸었다. 시청측은 다음달 있을 추경 때 다시 시도해 볼 참이나, 의회 통과 여부는 역시 불투명하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신광면민들은 "먹는 물 이상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느냐? 올 초 예산에 반영됐더라도 40여억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확보하고 공사까지 하려면 빨라야 2003년 말은 돼야 옳은 물을 먹을 수 있을 지경 아니냐!"고 분노를 터뜨렸다.

◇식수 대체 힘든 작업=포항시청은 영천댐 물을 받아 이곳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이럴 경우에도 각 가정 부담이 40여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있다. 주민들이 이만한 부담을 할 수 있는지 조사 중인 신광면 사무소 관계자는 "혼자 사는 노인들 대부분은 '벌이도 없고 얼마 살지도 못할테니 나는 제외해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사정2리 박성만씨는 "살기 힘든 홀몸 노인들에게 상수도 물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다"는 말로 현장 사정을 전했다.

당국으로서도 난관은 하나 둘이 아니다. 대체 수원 개발이 엄청안 자금을 필요로 하고,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는 것. 신광면 문제가 작년 말에 불거진 후 포항시청이 마련한 대책(영천댐 물 인수)에 따르면, 공사비만도 40억원이나 들고, 공사 기간도 2년이나 걸린다. 단시간 대안은 없다는 얘기이다.

◇불소 얼마나 무섭나?=정상기준치 만큼 정수장에 넣는 것을 놓고도 현재 유해 시비가 벌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 20배나 들었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경북도 보건환경연구원 김종용 수질분석 과장은 "불소가 3~6㎖/ℓ 정도 든 물을 장기간 마시면 반상치는 물론, 출혈성 위장염, 급성 복성 신장염 등이 올 수 있고, 심근에도 매우 해롭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다 함유 간이상수도는 빨리 폐쇄조치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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