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변 아지매의 자본주의 체험

"자본주의 사회는 돈만 아는 덴 줄 알았더니 한국 생활 하면서 활력과 인정도 넘치는 곳임을 깨달았습니다". 안동과학대 물리치료과 2학년인 중국동포 김옥설(53, 연변 장애인연합회 재활부장)씨. 작년 3월 늦깎이 유학 왔다.

쉰 살을 넘어 다시 한국의 대학생이 된 사연은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중국 대학에는 만학의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연변에는 물리치료학과가 없는 것. 연변에서 소아마비 환자 및 척추환자 등을 돌봐 오다 자신의 전문성이 모자란다고 생각, 단단히 마음먹고 건너 왔다고 했다.

김씨는 유학을 위해 2년치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2만위앤(300만여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한 학기 등록금만도 무려 190만원. 책값.생활비를 합해 일년이면 400만여원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맥이 풀렸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의 별따기로 얻은 유학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휴일, 방과 후, 방학 등에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파트 청소, 고추밭 일, 비닐하우스 작업, 식당 주방일… 그러고도 학비 대기조차 만만찮은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50대의 고학생.

"연변에서 받던 월급이 한달에 1천200위앤(13만여 원)이니까, 무려 그 15배나 되는 한 학기 등록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이지요. 그런 만큼 조국의 역사도 배워가고 싶고, 장애인 특수교육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좀처럼 도서관 갈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김씨는 '50대 고학생활' 조차 그리 고달프게 느끼지 만은 않는다고 했다. 2003년에 졸업하고 연변으로 돌아 가면 자신이 그렇게 안타까와 하던 장애인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대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김씨의 이같은 고귀한 뜻과 고학 생활이 드디어 안동 시내에 알려졌다. 재학 중인 물리치료학과 이승주 과장 교수가 먼저 나서서 모금운동을 벌인 덕분. 올 초에는 경북 장애인 재활협회 박창희 회장이 2평짜리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 줬다. 안동 로터리클럽이 학비로 180만원을 내놓고, 안동간고등어 류영동 사장도 100만원을 보탰다.

"잠깐 사이에 수천만원이 모금되는 TV 이웃돕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감동을 깊이 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기업간의 상품 경쟁력도 높혀 생산력이 향상돼 소득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레 의식도 높아지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중국의 대학에서는 정치 분야를 전공했고, 28년간 공산당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마르크스주의가 몸에 밴 김씨. 그러나 조국의 품 안임을 다시 느끼고는 감격해 했다.

"동포애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더 열심히 배워, 돌아가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더 헌신하겠습니다". 김씨는 오는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늘도 방과 후면 어김 없이 시내 식당을 찾아 주방일을 시작한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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