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5차문제

문제 : 다음 제시문 (가), (나), (다)에는 죽음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태도가 각기 다르게 드러나 있다. 이들의 다른 점을 기술하고, 이를 논거로 활용하여 인간이 죽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논술하라.

(가) 소크라테스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라고 하면, 이제 인생의 여로의 마지막에 이르러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감에 있어, 일생 동안 추구해 온 것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충분한 이유가 있네. 그러므로 나는 큰 기쁨을 가지고 내 갈 길을 가는 걸세. 마음에 각오가 되어 있고 마음이 정화되었다고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갈 걸세"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정화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즉, 영혼이 모든 방면에서 육체로부터 떠나 자기 자신을 수습하고 저 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자기만으로 사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하면 육체의 쇠사슬로부터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 철인(哲人)은 늘 죽는 일에 마음을 쓰고, 따라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을 가장 덜 무서워하는 자일세. 그들이 늘 육체와 싸우고, 영혼과 더불어 순수하게 되기를 원했다면 말일세.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어 하데스[死後 世界]에 도착하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바라던 지혜를 얻게 될 희망이 있고 동시에 그들의 원수와 함께 있지 않게 될 걸세. 그런 곳으로 떠나려 할 즈음에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떨고 싫어하는 것처럼 모순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플라톤, '파이돈'에서

(나) ① 노자가 죽었을 때 진일은 문상을 가서 형식적인 곡(哭) 세 번만 하고 나와 버렸다. 제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그분은 선생의 벗이 아닙니까?" 진일은 대답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그런 문상으로 괜찮을까요?" "괜찮아. 처음 나는 그를 인물이라고 보았네만 지금은 달라. 아까 내가 들어가 문상할 때, 늙은이는 제 자식을 잃은 듯이 곡을 하고 있고, 젊은이는 제 어버이를 잃은 듯이 곡을 하고 있더군. 사람들이 모인 것은 그가 반드시 요구하지는 않았더라도 슬픔을 말하고 곡을 하도록 은연중 시킨 바가 있기 때문이지. 이것은 생사(生死)라는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 진실을 거역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본분을 잊음이야". ②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가 문상을 갔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아내와 함께 살고 자식을 키워 함께 늙은 처지에 이제 그 아내가 죽었는데 곡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무정하다 하겠는데, 하물며 질그릇을 두들기고 노래를 하다니 이거 심하지 않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가 않소. 아내가 죽은 당초에는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소. 그러나 그 태어나기 이전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요.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기(氣)도 없었소.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해서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기며, 형체가 변해서 삶을 갖추게 된 거요. 이제 다시 변해서 죽어 가는 거요. 이는 춘하추동이 되풀이하여 운행함과 같소. 아내는 지금 천지라는 커다란 방에 편안히 누워 있소".

-'장자'에서

(다)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 다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몸을 솟구치면서 울부짖을 차례였다.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식인지 아무도 모른다. 목청껏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면 소리와 함께 고통이 발산되면서 곧 환장을 하거나 무당 같은 게 되어서 죽은 영혼과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실지로 그런 경지까지 도달한 적은 없다. …(중략)…원태야, 원태야, 우리 원태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 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병 한 번 치른 적이 없고, 청동기처럼 단단한 다리와 매달리고 싶은 든든한 어깨와 짙은 눈썹과 우뚝한 코와 익살부리는 입을 가진 준수한 청년입니다. 걔는 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젊은 의사였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중략)…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에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사랑 그 자체라는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젯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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