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사의 소리

청소년기에 들어선 자녀를 둔 부모들이 흔히 탄식한다. "요즘 애들은 정말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런 부모들은 대개가 "내가 너만 했을 때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훈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훈계는 결국 자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잔소리로 끝나기 십상이다.

얼마 전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제일 바라는 게 뭐지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거침 없었다. "우릴 좀 더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잔소리 좀 그만 하셨으면 좋겠어요". 뭘 그리 이해 못하고 잔소리를 하시더냐고 되물었다. "공부 할 때 왜 음악 듣느냐, 연습장에 써 가며 공부해라" "옷차림새가 그게 뭐냐" "친구랑 무슨 전화를 그렇게 오래 하냐"… 말로 다 못 한다고 했다. 부모 자식 사이의 이같은 생각 차이는 적잖은 갈등과 문제를 불러온다.

아버지들의 경우 엄마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흔히들 자녀 교육은 엄마 몫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소리냐고 항변하는 아버지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그러나 요즘 같은 핵가족 사회에서 "나는 돈을 벌어 올테니 애들 교육은 당신이 맡으라"는 식의 아버지는 곤란하다. 자녀 교육 문제 만큼은 부모들간 대화.이해.인내로 풀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3년 전부터 '아버지 학교 방문의 날'이란 행사를 하고 있다.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밀려나 있는 아버지들로 하여금 자기 아이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고, 학교 생활도 눈으로 확인케 함으로써 딸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다.

지난 21일 저녁에도 이 행사가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서는 부녀는 다소 서먹서먹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점차 진행돼 가자 어린 시절 '아빠 손잡고 나들이 갈 때'의 모습들이 화사롭게 피어났다. "친구들 앞에서 아빠가 이상한 춤이라도 추면 어쩌나"하고 사춘기 소녀답게 염려 아닌 염려로 아빠를 못 오게 말리기도 했다는 학생, 어느샌가 아버지와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하고 게임하고 있었다.마지막 촛불 행진 때는 끝내 부둥켜 안고 우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뭉클한 그 무엇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울음은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한 반성의 눈물일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다짐의 눈물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는 아버지가 없다"는 게 교육계에 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자리에는 분명히 아버지가 있었다.

이필희(대구 신명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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