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밤마리장터, 날마다 춤판

섬 같이 조용했던 합천 옛 '밤마리 장터'.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그 유명한 '소벌'(우포늪, 창녕 이방면)과 마주해 있는 덕곡면 율지리 이곳에서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춤판이 벌어진다.

오광대 패가 양반을 조롱하는 탈놀음을 벌이는가 하면, 사물놀이패는 지신을 밟는다. 마을 곳곳은 탈 장승과 벽화로 뒤덮혔다. 한적하던 농촌 마을이 갑자기 특별한 문화 공간으로 바뀐 것.

본격적으로 일을 벌인지 얼마 안됐는데도 벌써부터 대구.부산.경남 등 곳곳에서 구경꾼이 몰린다. 모두가 전통문화의 신명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 지난 22일에는 대구 흥사단 문화탐방팀 40여명이 와 탈·장승공원, 서낭당, 나루터, 고인돌 등 문화유적을 답사했다.

23일엔 안동대 김명자 교수 등 '2001 지역문화의 해 팀' 등이 모여 탈·장승축제 및 문화관광 마을 조성을 위한 컨설팅을 했다. 26일에는 대구 풍물패 '매구', 김해 가락민속예술보존회, 현지 밤마리 오광대 보존회 등이 합동 공연했다.

26일 관람객은 무려 400여명. 이들도 신명나는 잔치에 동참한다. 이 구석진 장터를 이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 오는 것일까? 통로 중 하나는 덕곡면의 인터넷 홈페이지(www.tokkok.or.kr). 신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네들 끼리통하는 통신망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간다면 멀잖아 밤마리 장터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명 마당 중 하나로 부상할 것이 틀림 없어 보일 정도.

그러나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작년 1월이었다. 최호준(49) 면장의 부임이 신호탄. 그는 땅에 묻힌 옥을 알아보고 깨내듯, 이곳이 '오광대' 발상지라는 점에 착안했다. 최 면장은 "묻혀져 가는 전통문화를 누군가는 보존·계승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을 벌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접한 창녕 소벌(우포늪), 고령 가야 고분, 합천 해인사 등을 연계하면 틀림 없이 관광벨트의 핵심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 땅은 낙동강 나루터이던 시절 삼(대마) 집산지였다. 많은 장사꾼들이 수산물이나 기타 일용품을 배에 싣고 와 대마와 바꾸느라 큰 교역장으로 번성했다. 관가에서도 이에 착안해 세금 수입을 늘리기 위해 도박장 개설이나 흥행물 공연을 장려, 전국에서 흥행단이 몰려 들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산물이 광대놀이. 광대놀이는 이곳에서 발상해 진주·마산·고성·통영·김해·수영·동래 등으로 흘러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밤마리에서 공연되는 오광대는 첫 과장이 다섯 광대(五方神將)로 시작된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혀졌다.

면장이 앞장 서자 주민들도 합심해 장승을 깎아 세우기 시작했다. 밤마리 오광대 보존회를 만들고, 장승학교를 만들었으며, 흥부 박 심기 운동도 벌어졌다. 주민 최훈집(44·농업)씨는 "귀양지 같던 이곳이 문화마을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스스로 놀라와 했다. 노력은 드디어 작년 8월15일의 '제1회 탈·장승 축제'로 결실됐다.

잇따라 문화관광부의 '2001 지역문화의 해 추진위원회'에서는 이 축제를 지원사업으로 지정해 줬다.

하지만 춤판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지난 달. 최 면장은 앞으로는 최소한 한달에 두번은 공연이 이뤄지도록 할 작정이라고 했다. 물론 8월에 하는 연례 공연 탈.장승 축제도 계속된다. 외지에서 오는 공연단과는 품앗이 형태로 이곳 공연단과 상호 출연만 할 뿐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김해 가락오광대 김재걸(47) 회장은 오히려 "오광대 발상지에서 공연을 가지니 고향에 온 느낌"이라며, "우리도 앞으로 이곳에서 연 4회쯤 정기공연을 가질 계획"이라고 했다.

◇밤마리 장터 가는 길 = 대구에서는 88고속도를 타고 가다가 고령.합천 톨게이트로 빠져 고령 쌍림의 군도 5호선으로 접근하면 된다. 부산.경남 경우 구마고속도 창녕 톨게이트에서 내려 합천 방향으로 진입, 창녕 이방면을 거쳐 낙동강 율지교를 건넌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