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봇대 까치와 전쟁 이젠 총메고 나섰죠

홍승표(52)씨는 까치 잡는 포수다. 한국 전력 대구지부 배전실에서 23년째 근무중인 그가 지난해부터 총을 메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전화선 보수나 설치가 그의 원래 일이지만 매년 2월부터 5월까지는 까치집을 헐거나 까치를 잡느라 총을 메야 한다.

◈대구지부 총포소지 54명

이 때문에 지난해 수렵면허와 총포 소지허가까지 받았다. 한전 측이 지난 16년 동안 '까치 퇴치' 혹은 '까치와의 동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후 택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홍씨처럼 까치 퇴치를 위해 총포 소지허가를 받은 사람은 한전 대구 지부에만 54명. 그들이 올해 잡은 까치는 모두 6천여마리. 홍씨는 그 중 200여 마리를 잡았다. 까치의 막바지 산란기를 맞아 요즘은 포획보다 까치집 철거에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까치를 길조로 알고 있지만 알고보면 피해를 입히는 놈입니다". 까치는 잘 익은 과일을 쪼아 망치고, 축사의 사료를 훔치고, 정전을 일으킨다. 까치에 의한 전국 농산물의 피해는 99년 기준, 사과 79억원, 배 14억원, 포도 36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매년 대구 시내 정전 사고의 70~80%가 까치 때문이었다. "까치는 새치곤 너무 똑똑해 탈입니다. 놈들은 사람을 겁내지 않지만 한전 직원 복장, 한전 자동차, 총만 보면 쏜살같이 도망칩니다. IQ가 40정도에 불과하다지만 집 짓는 능력과 속도를 보면 이보다 훨씬 높은 것 같아요". 홍씨는 까치가 결코 만만한 적수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까치는 지난 16년간 사람들이 짜낸 갖가지 전술을 무력화시켰다. 녀석들은 까치텐트, 풍차, 뱀 모형, 그물, 바람개비, 끈끈이 풀, 냄새가 지독한 빙초산까지 '킬킬' 비웃어 버렸다.

◈작년 둥지 10만개 헐어

지난 해 홍씨와 한전이 헐어버린 까치둥지만 해도 10만여개. 정전 위험이 없는 곳은 아예 헐지도 않는다. 까치는 제자리에 애착이 강해 헐어내면 그 자리에 또 짓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싸움이 그렇듯 까치와의 전쟁에서도 중요한 것은 명포수도, 무자비한 철거도 아니다. 바로 민심이다. '까치=길조'로 알려져 주민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98년까지 경북도내 12개 자치단체를 비롯 서울, 대전 등 4개 광역 자치단체가 까치를 상징새로 받들었다. 까치가 민심의 얻고 있는 한 까치집 철거도, 까치 포획도 어렵다. '왜 길조를 잡고 난리냐' 는 주민들의 비난이 거셌던 것이다.

올해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지속적인 홍보와 더불어 까치 폐해가 속속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변했다. 지금은 서울을 비롯한 여러 자치단체들이 상징새를 변경하거나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일단 농민과 한전은 민심을 얻었고, 반대로 까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잃어가는 셈이다.

마을 앞 미루나무에서 까치가 울면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기대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두곤 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을까. 그러나 세월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무서운 가 보다. 오늘, 까치는 몰아내야 할 흉조(凶鳥)가 돼버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