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전읽기 강의 6년 김기태씨

◈고전속에서 자아 찾아요41세 남자, 김기태(대구시 동구 신천 3동)씨. 나이와는 어울릴 성싶지 않은 맑은 얼굴과 정직한 목소리.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 과외 학원에 대해, 장래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그의 삶엔 40대의 삶에 흔히 배어 있는 기름기가 없다. 돋보기를 바싹 갖다댄다고 해도 그에게서 흉칙한 세월의 흔적을 찾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매주 목요일 대구 시내 삼덕동 연암찻집엘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5,6명의 사람들과 마주 앉아 도덕경을 풀이한다. 그의 강의는 도덕경에서 금강경, 논어, 중용, 성경까지 넘나든다. 그의 풀이는 번역이 아니라 고전을 매개로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밝히는, 이른바 '삶의 김기태식 고찰'쯤으로 보면 적당하다.

◈95년부터 강의 시작

김기태씨가 처음 강의를 시작한 것은 95년. 혼자 공부하는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기를 희망하면서부터. 대구 시내의 찻집과 정화여고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경전을 풀이한다. 또 2주에 한번씩 서울, 구미의 사회복지관을 찾아 강의한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다. 대학생, 현직 교사, 쌀집 아저씨, 푸줏간 아저씨에 선천성 장애를 앓는 사람도 끼여 있다.

일상에 길들여진 생활인이 김기태씨의 삶을 엿본다면 금세 난장판이라고 결론 내릴 지도 모른다. 20여년전 대학생이던 김씨는 어느 날 삶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곧 휴학계를 던지고 막노동꾼이 되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간직한 채 김기태씨는 휴학과 막노동을 반복하며 가까스로 대학을 마쳤다. 졸업 후 그는 도시의 직장인이기를 거부하고 대관령 기슭 한 목장의 일꾼이 됐다. 광부가 되려 대관령을 넘던 길에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다.

김씨는 일년 남짓한 목부 생활 끝에 대구 시내 여학교의 윤리교사가 됐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보람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경험과 지식을 파는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속리산 토굴 금식기도 수행

김기태씨는 사표를 던지고,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이어서 경기도 포천 수도원에서 삭발수행, 속리산 자락의 토굴 금식기도. 계속되는 수행에서도 그는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번에는 추자도와 홍도를 오르내리는 고기잡이배의 선원이 되었다. 그러나 뱃사람 생활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다시 대구로 돌아온 그는 한 신문사에서 근무했고 남자고등학교의 교사노릇도 했다. 그러나 그는 또 떠나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소?" 그는 간단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가졌던 의문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하나이자 둘이고 셋이며 또 넷인 것은?'

그것은 곧 '네가 누군인지 아는가?'하는 질문이다. 수많은 여행객을 황천길로 안내했던 이 난제를 오이디푸스는 너끈하게 풀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대답을 할 뿐 그 뜻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눈을 찌르고 평생 떠돌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황 18년째 참뜻 알아

김기태씨는 참된 뜻을 알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의 방황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고 세월은 흘렀다. 스무 살에 싹튼 그의 방황은 스물 여덟에 꽃을 피웠고 다시 서른 여덟이 돼서야 열매를 맺었다. 그는 상주의 작은 암자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오래된 단식수행으로 의식을 잃어갈 즈음이었다.

"일그러지고 지친 그대로의 존재가 완전한 모습임을 알았어요". 삶을 깨달았다기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유를 찾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모든 생활인은 수도자입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자기 몸뚱이만큼의 짐을 지고 견딥니다. 그러니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모든 생활인은 수도자인 셈입니다". 그는 "모든 존재는 사랑의 결정체다"라고 했다.

그에게는 생계를 보장할 만한 직업이 따로 없다. 강의가 없는 날 신축 건물 공사장이나 지하철,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일한다.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차비라도 내놓는 날엔 막노동마저 나가지 않는다.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돈을 쌓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세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 뿐입니다. 궁핍은 내 몫의 짐입니다. 가난을 벗자면 그 대가로 중요한 것을 잃어야 하니까요". 김씨의 아내는 그런 그를 타박하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적시는 일이 남편 몫의 삶임을 알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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