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달성공원 찾는 노인들의 일상

달성공원에는 평균 2천800여명의 노인들(65세 이상)이 매일 '출근'을 한다. 겨울에도, 눈 비 내리는 궂은 날에도 이곳을 찾는 노인은 많다.

노인들이 달성공원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숲과 벤치가 있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선단체들이 1주일에 서너 번 이상 무료 급식을 해 특별히 돈 들어갈 일도 없다.

50년 이상 목수 일을 했다는 양씨 할아버지(80). "아들 내외는 출근하고 손자들은 학교가고, 온종일 혼자 집에 있기가 적적해 4년 전부터 이곳에 나오기 시작했어". 할아버지는 공원에서 '사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근처의 비산동, 평리동 뿐만 아니라 수성구 만촌동, 동구 반야월 등 멀리서도 이곳을 찾아온다.

달성공원의 노인들은 대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몇 달 전부터 달성공원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김씨 할아버지(70)는 아직 얘기를 나눌 친구를 찾지 못해 입을 다문 채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세상 어디나 그렇듯, 달성공원의 노인들 사이에도 계층은 있다. 점심이라도 번갈아 가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네들끼리,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또 그네들끼리 어울린다. 1천원짜리 막걸리내기 장기라도 둘 형편이 되는 노인들은 또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무료 급식소를 찾는 가난한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들에게 말 한번 걸기도 어렵다.

"경로당은 가끔 막걸리라도 한잔씩 돌릴 형편이 돼야 갈 수 있소. 음료수라도 한 상자 사들이지 않으면 인간대접을 못 받소". 올해 82세의 이씨 할아버지가 동네 경로당을 버리고 달성공원을 찾는 이유였다.

"내가 이 나이에 경로당 가서 담배꽁초나 치우고 잔심부름이나 해야겠소? 영감, 할망구들이 하루 종일 집안자랑, 자식 자랑으로 사람 무시하는 데 눈꼴셔 못 가겠소". 이씨 할아버지는 자기처럼 가난한 사람은 경로당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고 말했다.

달성공원 바깥에 모여 앉은 노인들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분기탱천(?)해서 따지고 밝히는 일도 이젠 귀찮다고 했다. 노인들 대부분은 하루 평균 2,3천 원의 용돈을 쓴다. 왔다갔다 버스 비 내야하고 무료 급식이 없는 날엔 국수라도 사먹어야 한다.

"나는 거지가 아니야. 이따금 무료 급식소 봉사자들이 모멸감을 줄 땐 차라리 굶고 싶어".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유씨 할아버지(75)는 담배꽁초나 휴지를 줍는 정도의 일은 노인들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하루 일당 5천 원만 주면 일할 노인이 줄을 설 것이라고 했다. 세상과의 치열한 싸움을 마친 노인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이름아래 그들을 패잔병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대부분 달성공원 노인들의 '퇴근' 시간인 오후 6시를 지나도 군데군데 노인들이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가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아". 한 할아버지가 맥없이 대꾸했다. "비오는 날에도 건물 처마 밑으로 모여들거나 우산을 받쳐들고 거니는 노인들이 꽤 많다" 고 공원 관계자는 말했다.

달성공원 주변에는 20여 곳의 식당과 난전들이 있다. 막걸리 한 통 1천원, 소주 한 병 900원, 소금안주는 그저 준다. 형편이 나은 노인은 200원 짜리 달걀 안주도 곁들인다. 요즘은 경찰이 배치돼 많이 줄었지만 공원 주변에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가 노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박카스 아줌마'들은 때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노인들은 망측스러운 전염병에 오래도록 시달린다. 연로한 나이에 병원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아 치료도 어렵다. 내일은 '어버이날', 부모님께 카네이션 하나 달랑 달아 드리고 돌아서기보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시고 있는지, 외로워하시지는 않는지, 따스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