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고속 통신망 나눠쓰자 어림없다

◈ IP공유 논쟁 시끌주부 박선미(35)씨는 올해 초까지 초고속통신망 1회선에 가입, 2대의 컴퓨터를 연결해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컴퓨터 1대만 초고속통신망을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1대는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 초고속통신망 사업자들은 패밀리 상품을 내놓고 신규 가입비의 절반 수준인 1만5천원을 더 내면 새로운 IP(인터넷 프로토콜)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불경기로 인해 통신망 추가 설치는 부담스럽다. 때문에 박씨는 초등학생 아들과 남편이 서로 인터넷을 사용하겠다며 다투는 모습을 보면 공연히 짜증이 난다.

한국통신은 올해 3월 이전까지 일부 지역의 초고속통신망 가입자에게 IP를 2~5개씩 복수로 부여해왔다. IP를 나눠주는 NAS서버 일부의 SW(소프트웨어)가 문제를 일으켜 가입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조처였다. 복수 IP를 주면 IP 하나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IP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이에 따라 가입자는 별다른 장치없이 복수의 컴퓨터에 초고속통신망을 연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3월부터 NAS서버의 문제점이 해결됨에 따라 한국통신은 모든 가입자에게 1개의 IP만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IP 가격으로 목돈의 IP를 덤으로 사용해온 가입자로서는 서운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초고속통신망 가입자가 하나의 IP를 여러 대의 컴퓨터에 연결해 사용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만~수십만원대의 IP공유 SW나 HW(하드웨어)를 구입하면 된다. IP공유기를 이용하면 하나의 IP로 최대 253대의 컴퓨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SW나 HW를 구입해야 하지만 인터넷을 많이 쓰는 소규모 사업자나 가정은 이득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1만5천여대의 IP공유기가 팔렸고 올해는 판매량이 50만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IP공유기 사용으로 인해 수입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이자 초고속통신망 사업자들은 자체 약관에 IP공유프로그램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삽입, 대응책을 마련했다. IP공유기를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IP공유기 제조사들은 통신사업자의 이같은 약관이 무효라고 공정위에 제소했다. 통신회선을 임대한 이상 그 회선을 어떻게 사용하든 그것은 가입자의 권리라는 것. 하지만 통신사업자는 IP공유기를 사용하면 통신속도가 떨어지는 등 다른 가입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본다며 반박하고 있다. 또 통신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그만큼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IP공유기 사용여부를 통신사업자가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고장수리 출장 때 발견하지 못하면 사실상 적발이 어렵다. 이 때문에 두루넷, 온세통신, 하나로통신 등 통신사업자들은 IP공유 방지를 위해 가입자 PC에 설치된 랜 카드 고유번호를 하나만 인식하도록 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PC를 바꾸거나 랜 카드를 교체한 선의의 가입자들이 일일이 통신업체에 연락해 승인을 얻어야 하는 불편을 초래했다. 당연히 가입자들의 반발을 불렀고 정통부는 최근 통신사업자의 이러한 부당행위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IP공유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IP공유기 제조사와 가입자들이 판정승을 거뒀다. 그러나 통신사업자들의 IP공유금지 약관에 대해서는 ISP업체와 IP공유기 제조사, 가입자간에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1회선 1 IP 약관이 불공정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곧 발표될 약관심사위원회의 대체적 견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약관'이 효력을 유지하더라도 IP공유기 판매를 막을 방법이 없는 데다 홈네트워크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IP공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IP공유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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