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소의 처지를 노래한 농부들의 '소타
농부에게는 씨앗과 토지 못지 않게 소도 귀중하다. 소가 농우로서 일꾼 열 몫의 일을 감당하기 때문에 소를 한 가족처럼 대우하였다. 거름을 밟아내고 노동력을 제공하던 '일소'가 어느 때부턴가 쇠고기를 제공하는 상품화 된 '고깃소'로 둔갑하면서 소가 농민들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수입쇠고기로 소값이 폭락하면서 농가 경제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한 까닭이다. 소를 순전히 쇠고기로 만들어 이문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상업주의 탓이다.
과거에 우리 농부들은 소를 결코 상품화하지 않았다. 일소로 부리면서도 소의 처지를 생각하며 소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려 깊은 배려가 소타령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농부들 스스로 소의 처지가 되어 소타령을 노래함으로써 소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악할사 인간들아/ 소 인정을 들어보소
천상요절 생긴 코로/ 남글 후아 뚜ㄼ어내고
두 뿔조차 웬일인고/ 칠팔월 더우 아래
가니라고 가거마는/ 이구팔삭 이까리로
이 내 등을 후러친다/ 등갈비는 뜨끔 것고
의령 사는 박연악 할머니의 노래이다. 소타령은 주로 할머니들이 불렀다. 여성들이 소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하고 이를 대변하는 노래를 적극적으로 부른 것은 생명 본성에 입각한 모성의 정서에서 비롯된 셈이다.
처음부터 '악할사 인간들아 이 내 사정 들어보소' 하며, 사람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데서 소의 팔자 타령을 늘어놓는다. 소에게 가장 원망스러운 일이 코뚜레다. 조물주가 제 뜻대로 잘 만들어 놓은 코를 기어코 뚫어서, 나뭇가지를 휘어 만든 코뚜레로 꿰어 이리저리 마구 부리는 것이다. 소가 사람들에게 이끌려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순전히 코뚜레에 코가 꿰어 있는 탓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남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을 때는 흔히 '아무개한테 코가 꿰었다'고 한다.
칠팔월의 무더위 아래서도 땅을 가느라고 갈 건만은 사람들은 동아줄로 만든 고삐(이까리)로 등을 후려치면서 소를 재촉한다. 그때마다 소의 등짝은 뜨끔뜨끔 아프다. 이렇게 매를 맞아가며 간신히 논밭을 갈고 나면 소를 풀어놓는다.
좋은 꼴 좋은 풀에/ 묵어라고 놓건마는
깔따구는 물고 뜯고/ 딩기란 놈 물고 차고
흔드는기 꼬리로다/ 부치는 거 귀뿐이다
소가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은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풀을 뜯는 소의 처지에서 겪어보면 깔따구나 쇠파리, 진드기 등 온갖 벌레들이 덤벼들어 물어뜯고 피를 빤다. '원수놈의 깔따구는/ 오면서 뜯고 가면서 뜯고/ 손이 있어 칠 수 있나' 안타깝기 그지없다. 온 몸에 달려드는 날벌레들을 쫓기 위해 기껏 꼬리를 흔들고 귀를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고작이다. 그럭저럭 풀을 뜯어먹고 집으로 가면 어떤가.억바구 덕바구 갈고 나니
맛이 없어 쇠죽을 못 묵네
아이고 나 죽일라고 흰칼 가네
쇠죽을 묵을라고 아무리 히도
입맛이 없어 못 묵겠네
뒤숭받은 저 지집이/ 신 딩기다 신구중물
묵어라꼬 주건마는/ 맛이 없어 못 묵은께
병들었다 하옵시고/ 날랜 백정 들어대여
땡볕에 매를 맞아가며 '억바구 덕바구' 죽을동 살동 모르고 땅을 갈고 나니 입맛이 있을 턱이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전후사정을 알 턱이 없는 '뒤숭받은' 안주인이 거친 등겨와 쉬어빠진 구정물로 쇠죽을 끓여놓았으니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주인은 소가 병이 들었다고 칼을 갈고 백정을 불러다가 잡으려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쇠죽을 먹으려고 입을 다셔도 먹을 수가 없으니 어쩔 것인가.
저넘들 거동 봐라/ 묵자하고 공론한다
많이 보믄 시무 냥에/ 작기 보믄 열 닷 냥에
묵자하고 공론하네/ 칼을 갈아 옆에 두고
도찌 갈아 손에 들고/ 억대 겉은 이내 몸을
깊이 때리 씨러졌다
하동 사는 손순녀 할머니의 소타령이다. 소가 쇠죽을 제대로 먹지 못하자 병이 들었다고 잡아먹자고 공론을 한다. 고깃값을 흥정하고는 소 잡을 준비를 한다. 칼은 멱을 따기 위해 갈아서 곁에다 비치해 두고 도끼로 쇠머리를 때려서 쓰러뜨린다. '억대 같은 이내 몸을 깊이 때려서 쓰러졌다'고 소의 죽음을 비참하게 묘사한다. 사람은 살아 생전에 갖은 고생을 하더라도 죽으면 무덤 속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그러나 소는 사정이 다르다. "살아서 고생이고/ 죽어 또한 고생이지"라는 노래처럼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다.
요내 살이 많은 골로/ 만인간이 모여들어
가죽인들 베릴소냐/ 왜놈들 대벙거지
그 나무치 남는 거는/ 새각시들 징신깔신
삐가지는 베릴소냥/ 늙은네들 곰꺼리
뿔다구는 베릴소냥/ 선부님들 빈잔걸이
이 내 살은 베릴손가/ 한량놈의 술안주로 다나가네
이 내 뻬는 베릴손가/ 한량부채꼬리로 다나가네
이 내 가죽 베릴소냐/ 소고방구 다나간다
이 내 뿔은 베릴소냐/ 등잔테가리로 다나간다
하동사람 손순녀와 정읍사람 송옥표 할머니의 소타령이다. 소는 몸집이 크고 살코기가 많은 까닭에 소 한 마리 잡으면 만 인간이 달려든다. 소의 고기 살은 '한량놈의 술 안주'로 다 나간다. 그럼 '가죽인들 버릴 것이냐?' 큰 가죽은 '왜놈들의 벙거지'나 북장구를 만드는 데 쓰이고, 짜투리 가죽들은 새댁들이 비올 때 싣는 진신(泥鞋)의 깔개로 쓰인다. 그러니 가죽 하나 남을 것이 없다.
쇠뼈는 노인네들 곰국 거리로 나가거나, '한량들의 부채 손잡이 장식'으로 나간다. 또는 쇠뼈를 정교하게 깎아서 "젊은이의 이쑤시개/ 늙은이의 귀쑤시개"로 쓰기도 했다. 뿔도 버리지 않았다. '이 내 뿔을 버릴소냐/ 등잔 테 가리로 다 나간다'고 하는 걸 보면, 등잔 만드는 데 썼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소는 살아생전에 뼈빠지게 일하고 죽어서조차 온몸을 다 바쳐 봉사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소는 호강이다. 밤낮 사료만 먹고 살만 찌면 된다. 그러나 사실은 놀고 먹는 요즘 소가 더 죽을 지경이다. 사실은 무지막지하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 광우병과 구제역으로 죽어갈 뿐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무더기로 도축되고 있다. 사람들이 광우병에 감염되고 구제역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영국에서만 221만 마리의 가축들이 무참하게 도축되었다. 소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참혹한 살육이다.
비극의 원인은 양질의 고깃소를 빨리 생산하려고 육골분과 같은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인 탓이다. 풀과 곡물을 먹고 자라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주고 가두어서 기르니 각종 질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하면 각종 성인병이 발생한다. 자연의 원리를 거스른 탓이다. 지금 영국사람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광우병이다. 소에게 가장 큰 공포는 뭘까. 옴짝 못하게 우리에다 가두어 두고 동물성 사료를 잔뜩 먹여서 자신의 고기를 보다 빨리, 보다 많이, 보다 맛있게 먹으려는 인간이다. 인간의 공포와 소의 공포는 생태학적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 소타령 같은 진정한 소리문화가 없는 우리 시대의 비극이 뾰두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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