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실 밖의 넓은 세상-비영리 공부방 '배꼽마당'

민지, 효경이, 다난이… 오늘도 학교가 끝나자 모두 모였다. 대구 평리1동 작은 공부방. 어린이들은 아무데나 엎드려 동화책을 읽거나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거나 뭔가를 열심히 재잘거렸다. 선생님이 들어서자 "오늘은 뭐 해요?" 억지 공부도 없고, 나무라는 선생님도 없는 자유로운 공동체.

'배꼽마당'. 1990년 1월 문 연 비영리 민간 공부방이다. 비산 6동에서 시작해 이웃 평리 1동을 2, 3년에 한번씩 오가며 12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은 대구에서 가장 개발이 느린 곳 중 하나. 그래도 공부방을 운영하는 손병숙씨는 다행이라 했다. "처음 공부방이 문 열 때보다는 외견상 많이 발전했다"는 것. 소방도로도 생기고 슬레이트 지붕들이 2, 3층 슬라브로 바뀌었다는 얘기.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삶은 역시 거의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공장노동이나 막노동 같은 동네 사람들의 노동형태는 지금도 그대로. 저임금, 위험한 작업환경, 비좁은 단칸방도 변하지 않았다. 높은 물가, 엄청난 교육비, 전망 없는 미래가 주는 좌절감만 오히려 커졌다고 했다.

이런 지역이니만큼 10년도 전에 민간 공부방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빈민운동, 지역 공동체 운동에 뜻 둔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배꼽마당' 외에도 '희년'(비산2·3동) '날뫼'(〃) '민들레'(비산4동) 등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2년 세월을 변함없이 지켜온 덕에 '배꼽마당'은 주민들 사이에 지극히 자연스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처음 문 열었을 때 이상스레 쳐다보던 눈길도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이웃이 된 것. 몇년 전에는 '일하는 지역민과 아이들의 희망터'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청년들과 학부모들의 공동체까지 만들어 가려는 생각. 청년 노동자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설돼 풍물·탈춤반이 생겼다. 자모회도 훌륭하게 꾸려지고 있다. 올해는 여성 노동자 교실이 생길 예정.

그러나 이 지역이 모습을 쉽게 바꾸지 못하듯, 공부방 운영도 제자리 걸음이라고 했다. 학생이래야 초등부 12명, 중등부 3명이 고작. 어려우면서도 이 지역 학부모들이 "남들 만큼 공부는 시켜야 한다"며, 학원 보내는 데 열중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하는 회원 가입을 원칙으로 하고, 회비로 월 1만5천원을 내야 한다. 형편이 안 되는 달에는 안 내도 그만. 나머지 비용은 30명쯤 되는 개인 후원자들이 보탠다.

아무리 어렵다지만 공부방의 모양새는 다른 곳 못잖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수세미 화분이 지키고 서 있었다. 어린이들이 지난달 심은 뒤 매일 관찰하고 일지를 쓰는 대상. 한쪽 벽엔 제법 큰 책꽂이에 괜찮다 싶은 동화책이 어지간히 꽂혀 있었다. 빈 벽마다 삐뚤삐뚤한 작품들이 매달려 있었고, 다른 한 쪽으로 학용품이며 학습에 쓸 재활용품, 각종 악기들이 얹힌 선반이 보였다.

초등부의 일주일은 월요일 식물, 화요일 옛날 이야기, 수요일 노래·무용, 목요일 수학, 금요일 그림 등으로 진행된다. 참고서 배우기나 문제집 풀기는 없다. 모든 프로그램이 창의력과 사고력 위주. 수학도 답을 내기보다 수리 사고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 중학생 경우, 국어는 '언어교육'에서, 수학은 '원리와 과정'에서, 사회는 '자치회의'에서 가르친다.

"문을 열 때부터 이런 원칙 아래 공부방을 운영했지요. 일반 사회에서는 요즘 와 창의성 교육이 유행이데요? 수성구에는 그런 전문학원도 있다죠? 그런데도 이 지역 학부모들은 오히려 입시 위주 교육에 매달립니다". 손씨는 맥이 풀리는 듯했다. 계층 상승을 바라는 부모들의 욕심과 올바른 교육이 일치점을 만들기는 쉽잖을 수도 있을 터.

교사는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손씨 외에 자원교사가 5명, 실무자가 2명 있었다. 대학생도 있고 현직 교사도 있었다. 또다른 대학생 2명은 기본 교육을 받고 조만간 교사로 나설 예정. 미술치료 교사 등 뜻있는 전문가들도 돕고 있었다.

'역사'가 제법 길다 보니 공부방 출신 교사도 생겼다. 중학교 때 여기서 공부했다는 자원교사 전종호씨(24)는 사범대에 진학한 뒤 후배들을 가르치려 나섰다. 이곳 출신이면 취업해도 늘상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고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저녁 무렵. 하지만 어린이들은 공부방에 남아 있었다. 재잘거리는 것에도 지쳤는지, 부모가 일터에서 돌아올 시간을 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중학생 맞을 준비로 분주하면서도, 교사들은 혹시 하며 어린이들에게 먹일 저녁밥을 준비하느라 쌀을 씻고 있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