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관광객이 외국 공항의 면세점에 들르면 귀신 같이 알아보고 물건을 내보이며 정확한 발음으로 '진짜'라고 말하는 점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말을 특별히 배운 적은 없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마다 '진짜'냐고 다그쳐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유독 진짜를 찾는 걸까. 속으면서만 살아와서 그런가. 가짜들이 판을 치기 때문에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아설까. 하긴 우리는 가짜 만드는 재주가 세계 1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서울 이태원 골목에는 유명 상품으로 둔갑한 가짜들이 즐비하다. 이젠 수출까지 활발해져 홍콩에서 팔리는 가짜 유명 브랜드 제품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많다고 한다. 상인들은 물론 그 브랜드의 직원들마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란다. 손재주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손재주를 자랑하기는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대외 이미지 추락 뿐 아니라 범죄에까지 활용되기 때문이다.
▲4천억원대 금융사기범 변인호씨가 중국과 홍콩에서 2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서너 개의 위조여권으로 국내에 서너 차례나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한 측근은 그가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고 말했다지만, 그 위.변조 수법과 여권 관리체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 준다. 더구나 그런 여권이 고가에 거래돼 전문 절도단이 생기고, 전문 장비를 갖춘 밀매조직도 판을 친다니 기가 막힌다.
▲진짜와 가짜는 양심의 문제다. 선진 외국의 사람들은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면 우리는 흔히 '양심에 호소'한다. 이는 우리는 '양심의 사회'와는 먼 거리에서 살고 있다는 말도 된다. '양심'의 라틴어 어원은 '더불어 산다(Con+scientia)'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진짜 양심'을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가짜 만드는 수법이 갈수록 치밀해지고, 그 독소가 뿌리뽑히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가짜꽃이 진짜꽃보다 진짜 같고, 진짜꽃이 가짜꽃보다 가짜로 보이는, 이런 세상에서도, 가짜 같지만 진짜인 꽃 한 송이 깊이 안을 수 있었으면. 나도 가짜꽃 같은 진짜꽃이었으면…' 문득 떠오른 말이지만, 우리가 이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 수는 없을까. '금강경'은 '부처를 보되 부처를 지우고 볼 수 있으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즉시 부처를 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가짜를 볼 때 되새겨봐야 할 교훈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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