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화살과 같은 존재이다. 한 시대를 관통해가는 화살로서의 생, 그가 남긴 시의 지층에는 한 시대의 아픈 역사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 동양의 보편적 시관으로 시(詩)는 말씀(言)과 집(寺)의 합성어다. 시인은 말씀의 집을 짓는 사람이란 뜻이다. 어떤 집을 짓느냐는 개개인의 시적 재능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시를 위해 일생을 다 살다 간 시인의 정신이야말로 보석보다 존귀하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신라의 시인 충담(忠談)과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의 경우를 보자. 삼국유사 권 제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사' 조를 보면, 삼월 삼짓날 반월성 귀정문루에서 나와 있던 경덕왕은 충담을 처음 만난다. 왕은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공양을 마치고 돌아오던 누더기 입은 충담에게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얻어 마신다. 그가 빼어난 향가 '찬기파랑가'를 지은 시인임을 안 왕은 나를 위해 노래를 하나 지어달라고 한다. 충담은 '임금은 아비요/신하는 사랑하실 어미라/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라 여길실진대/백성이 사랑을 알리라'라는 내용의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친다. 감명을 받은 왕은 그 자리에서 왕사(王師)로 봉한다. 그러나 충담은 권력의 핵심에 설 수 있는 왕사 자리를 홀연히 내팽개친다. 떠나가는 충담의 뒷모습에서 시인다운 의연함과 고고함이 서려 있다.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큰시인 미당이 세상을 뜬지 반년, 미당은 지금 세상에 다시 불려나와서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 친일 행적과 80년대 신군부를 찬양한 일련의 행위 때문이다. 아무리 빼어난 시를 남겼다한들 인간적인 약점을 다 덮을 수는 없는가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것은 미당의 업보요 자신의 몫이어서 안타깝다.
시인은 역사의 눈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한다.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충담과 미당, 명리(名利)에 따라 몸을 움직인 이 두 시인의 행적에서 시인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시를 잘 쓰기도 어렵지만 시인의 자존을 지키고 살기는 더욱 어려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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