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구에서 우러나오는 특유의 순박한 표정과 투박하면서도 감수성이 넘치는 연기로 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은 '은막의 자유인' 앤서니 퀸이 86세로 3일 타계했다. 영화 '길'에서 방랑곡예사 잠파노, '25시'의 모리츠, '노틀담의 꼽추'의 종지기 콰지모도 등은 그의 강렬한 개성이 돋보인 배역들이었다. '혁명아 사파타'와 '열정의 랩소디'로 두번의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았지만,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이던 역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었다. '내가 바로 조르바'라고 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을 동경했다.
▲그는 영화와 삶 모두에서 열정적이고 자유로웠다. 영화에서 늘 투박한 남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사생활도 한가지였다. 공식 결혼은 세번 했으나 숱한 여배우들과 밀애를 나눴고, 잦은 혼외정사로 선망과 비난이 떠들썩하게 교차하는 스캔들을 뿌렸다. 6명의 여인과의 사이에 9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뒀으며, 81세에 막내를 보고, 47세 연하의 여비서와 결혼해 지구촌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그의 생애는 회한으로 얼룩질만큼 파란만장했다. 멕시코 출신으로 미국 로스앤젤리스 빈민가에서 자라면서 구두닦이, 신문팔이, 전기 수선공, 푸줏간 도살꾼, 색소폰 연주자, 내기 권투선수 등으로 전전했다. 1933년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3년 뒤 영화 '파롤'에서 45초 단역으로 스크린과 인연을 맺었지만, '길'(54년) '노틀담의 곱추'(57년) '나바론'(61년) '25시'(67년) 등으로 각광을 받기까지 주로 불량배.악당 등 단역을 맡았다.
▲말년엔 배우보다 화가와 조각가로 왕성하게 활동한 그는 82년부터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 8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선포 40주년 기념 우표에 그림이 선정될 정도였다. 특히 조르바로부터 받은 영감을 조각 작품으로 표현해 주목됐으며, 98년에는 혜나-켄트협회 초청으로 아들 로렌츠와 함께 내한해 '창조자.연인.생존자로서의 예술가'를 주제로 서울(예술의 전당).대구(문예회관).경주(현대호텔)에서 동시 작품전을 갖기도 했다.
▲그의 타계를 두고 미국의 언론은 '마이티 맨' '빅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의 인생보다 훨씬 위대했다'는 찬사도 나온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자유로웠던 그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썼던 자서전 '원 맨 탱고'(97년)에서의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 것이 비극'이라는 내용의 말이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인생은 누구든 흐르는 시간 속에 묻히기 마련이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명복을 빈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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