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23)

◈아제르바이잔

취재팀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다음 목적지를 놓고 고심을 해야 했다.당초 일정에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야 하는데 비자 문제는 고사하고 열차편부터 마땅치 않았다.인근 국가들이 투르크메니스탄 경유를 기피,비용이 들더라도 카자흐스탄이나 이란으로 우회하는 노선을 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이 인접 국가와 각종 철도협정에 서명은 해놓고 운송요율 등 협약사항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데다,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워낙 심해 화물의 안전성마저 담보되지 않는데 따른 것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철의 실크로드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었다.아제르바이잔으로 건너 뛰기로 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취재팀은 타슈켄트 공항에서 오후 5시40분발 아제르바이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100여명 타는 중형비행기였는데 좌석배정은 있었지만 조종사와 스튜어디스 자리만 정해져 있을뿐 탑승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비행기표를 초과발행해 탑승객이 바닥에 앉는 일은 있어도 스튜어디스 자리 만큼은 반드시 비워놓아야 하는 게 이곳의 질서였다.

2시간여를 날았을까,창밖에 짙은 어둠이 깔리면서 바다위에 작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원유 시추선에서 분출되는 가스를 태우기 위해 켜 놓은 불꽃들이었다.카스피해를 건너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들어선 것이다. 1828년 세계최초로 석유가 발견된 나라,1920년부터 1950년까지 세계 원유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던 나라,집집마다 원유를 퍼내는 '메뚜기 펌프'가 있는,우리에겐 실로 '동화속 나라' 같은 곳이 아제르바이잔이다.

"1828년 이전까지 사람들은 석유가 뭔지 몰라 '더러운 물' 정도로 취급했습니다.우물을 파려고 삽질을 하면 시커먼 게 쏟아져 나오니 골칫거리였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아제르바이잔인 나리만(52.석유건설업)씨의 설명이다.나리만씨는 "그러나 옛 소련이 아제르바이잔에서 30여년동안 마구잡이로 채굴하는 바람에 지금은 생산량이 격감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아제르바이잔의 원유생산량은 하루 20만배럴로 노르웨이 400만배럴,사우디아라비아 900만배럴 등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육지는 거의 고갈됐고 해양도 최소 2천m 이상 땅속을 내려가야 가능할 정도니 미국,일본 등 극히 일부 서방 국가들만 컨소시엄형태로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에는 현재 페트로리엄,아무코 등 21개의 컨소시엄이 있다.그러나 1986년에 구성된 1차 컨소시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지금까지 전혀 진척이 없다.성공적이라는 1차 컨소시엄마저도 이미 매장이 확인된 지점에 대해 컨소시엄을 구성한 경우라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석유시추는 도박입니다.터지면 돈방석이고 안나와도 그만이죠.컨소시엄을 구성해 자금을 끌어모은 뒤 실패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안되거든요. 그러니 대통령 아들(곧 국회의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같은 최고위급 정치인들이 부정축재의 수단으로 악용하죠".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국 기업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제르바이잔 국립석유대학 시야푸쉬 카라에프 총장은 "2005년이면 현재보다 배이상 많은 원유를 생산,제2의 쿠웨이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현대,LG, 대우 등 1천600여개에 달하는 외국기업이 철수한 사실을 감안할 때 그의 주장은 대외홍보용일 가능성이 높다. '석유로 시작해 석유로 끝나는 나라'가 아제르바이잔이지만,이곳엔 아주 흥미로운 철도시설이 하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항과 바쿠항 사이에는 폭 300㎞의 카스피해가 놓여있는데 대형 바지선 6척이 하루 2번씩 교대로 양국 사이에 기차를 실어 나른다.화물이 실려있는 기차를 통째 실어 나르는 것이다.이 바지선은 옛 소련시대때 부터 운항한 것으로 한번에 화물열차 30량까지 운반 가능하고 10시간 정도 소요된다. 남한과 비슷한 크기의 영토에 780만명의 인구를 가진 아제르바이잔에서 철도(총연장 503㎞)는 다른 CIS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주된 교통수단이다.지난해 화물 1천300여만t을 운반, 전체화물 수송량의 90%를 소화해 냈다.몹시 낡았지만 전 구간이 복선,전철화되어 있다.

글:김기진기자

사진: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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