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루과이 라운드 10년 우리농업 어디로 가고 있나

(3)위협받는 식량안보

"이대로 나가면 큰 일 날 것 같아요".경북 성주군 가천면 용사리 가야산 자락 2천여평 논밭에 부인 박인숙(41)과 함께 밀농사는 짓는 정한길(44)씨. 갈수록 마음이 답답하다. 87년 읍내서 사업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옮겨 마을 떠난 주민들의 논밭을 사들여 시작한 농사다.

지난 90년대 들불처럼 번졌던 우리밀 살리기 운동에 푹 빠져 만사 제쳐 놓고 밀농사에 매달린 것. 그러나 우리밀에 대한 열기는 식었고 정부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밀보급과 소비촉진을 위해 산자락에 4억원으로 94년에 우리밀을 원료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드는 공장도 지었다. 우리밀을 잊어가는 어린 세대들을 위해 지난해 자신의 들녘에서 밀싸리 행사도 가졌다. 그러나 관심은 싸늘하기만 했다.

산비탈을 일궜지만 올해는 작황마저 좋지 않아 수확전 1천평의 밀을 베버렸다. 밀싸리 행사도 올해는 갖지 않기로 했다. 정씨는 "밀은 겨울농촌 푸르게 가꾸는 기능 뿐만 아니라 날로 심각해지는 식량자급 문제 해결에 더없이 좋지만 모두들 관심부족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우리밀살리기운동 대구·경북본부도 맡고 있는 정씨는 "앞으로도 밀농사를 지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99년 밀재배 2㏊…생산기반 붕괴

국민 한사람당 지난해 34·8kg를 소비, 쌀(94.8kg) 다음으로 제2의 주곡을 떠오른 밀이지만 이처럼 밀농사가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70년 97ha의 밀재배 면적은 84년 정부수매 중단으로 2ha(99년)로 줄었다.

밀 자급률도 70년 15.4%에서 지난해 0.1%로 추락했다. 성주군과 합천등 경남·북, 전남·북지역 일부에서만 겨우 명백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히 생산량도 줄어 96년 1만t에서 99년 5천t, 지난해는 3천t에 그쳤다. 한때 5천을 웃돌았던 밀재배 농가도 2천으로 줄었다. 앞으로 더욱 감소할 것 같다고 정씨는 안타까와 했다.

농업진흥청 남중현 맥류과장(농학박사)은 "날로 늘어나는 밀소비를 충당하고 식량자급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밀농업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면서 "현재 여름철 농사 후 겨울철에 놀리는 100만ha에 밀을 키우면 자급률을 50%대까지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밀생산 기반붕괴와 소비패턴 변화로 밀과 옥수수 두 곡물의 수입액은 농산물 1년치 수출액과 맞먹고 있다. 1년동안 농산물을 팔아 밀과 옥수수 사오기에도 부족한 지경.

지난해 농림축산물 수출은 15억3천170만달러. 반면 수입은 84억5천만달러로 69억1천850만달러 적자였다. 특히 옥수수와 밀 수입액은 9억3천770만달러와 4억7천만달러로 전체 농림수산물 수출액과 같은 수준. 지난해 농축산물 수출총액(12억7천720만달러)을 웃돌았다.

한때 식량자급 문제는 국가적 화두였다. 혼식을 강제했고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로 혼식여부를 확인도 했다.

◈인구 증가율 식량생산율 앞서

그러나 자급률이 날로 떨어지는 지금, 입맛도 서구화돼 쌀 대신 고기와 옥수수, 밀 소비가 늘고 외국 농산물 수입홍수로 식량안보의 위협에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최근 농약잡지에 소개된 조사자료를 살펴보자. 20세이상 농업인과 도시민 100명씩에게 자급도를 물었더니 20.8%가 자급률이 80~100%라고 응답했다. 50~60%가 될 것이라는 사람도 42.7%나 됐다. 그러나 99년도 자급률은 29.4%, 2000년은 28.4%였다. 우리 먹을거리의 70%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셈.

농림부 식량정책과 박병홍 서기관은 "떨어지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논농사 직불제와 밀생산 지원대책 등 여러가지 방안을 추진중"이라 말했다.

한편 전세계는 지금 식량문제로 심각하다. 경지면적은 줄고 인구 증가율이 식량 생산율을 앞서 식량부족이 심해지고 있다. 해마다 전세계적으로 1천200만명이, 하루에도 3만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UN이나 미국 월드워치연구소 등은 60억명이 넘는 현재 인구가 오는 2030년에는 89억명에 이르지만 곡물 생산량은 22억t으로 55억명만 부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99년의 만성적 기아인구는 8억명이었고 그 중 5억8천만명이 아시아·태평양쪽에 몰려있다.

게다가 세계 식량시장을 몇나라가 지배, 식량안보를 더욱 위협한다.

99년 전세계 옥수수 시장은 미국과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전체의 83%를 차지하고 콩은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85%, 밀과 밀가루 역시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가 55%를 차지했다. 쌀은 태국과 베트남, 미국이 48%를 점유했다.

◈교역·생산량 변화땐 '혼란'불가피

'21세기는 식량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이제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핵으로 대치했던 동서냉전 시대의 '핵우산'에 버금가는 '식량우산'으로 대체되고 있는 셈.

우리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우리 주식인 쌀은 세계 쌀 교역량의 10%에 불과한 중단립종(자포니카)이기 때문. 나머지 90%는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 장립종(인디카)이 차지하고 있다.

중단립종은 한국과 일본, 중국 길림성 등 동북 3성, 미국 캘리포니아 등 일부에서만 생산되고 극히 미미한 양만이 교역된다. 소비지역이 제한, 필요한 양만 생산되는 것. 세계 쌀교역량 자체가 생산량의 5%(2000년 경우 4억490만t 중 2천200만t) 수준에 그치는 '엷은 시장'을 형성, 교역량과 생산량이 조금만 변해도 큰폭의 변화를 초래하는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농협중앙회 해외협력실 통상협력팀 최찬호 박사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날로 추락하면서 70%넘게 외국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식량안보에 대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므로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