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언제부터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 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이가림 '석류'

유월은 석류꽃이 피었다가 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 꽃이 진 자리에 석류가 맺히고 가을이 오면 석류는 자신의 붉은 속을 내 보일 것이다. 사랑도 통상적인 감정의 어떤 뜨거움이 온전히 진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사랑의 본래 이름은 상처가 아닐까.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더 아프게/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이라는 비유는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시인 랭보가 말했지만 과연 상처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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