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 항소 70대 한국 원폭피해자 1심 승소

원폭 피해자인 곽귀훈(77)씨는 일본에서 수십년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지난 98년 꿈에 그리던 조국에 돌아왔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곽씨의 한국 이주를 이유로 매월 쥐꼬리만큼 지급하던 건강관리비를 끊어 버렸다. 분노가 치민 곽씨는 같은 해 10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폭자원호법상의 피폭자 지위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3년여의 법정투쟁 끝에 지난 1일 오사카지방재판소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은 곽씨에게 위로금 17만엔과 99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치료비(매달 3만4천엔) 등 모두 200만엔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곽씨의 승소는 사할린 징용, 정신대, 피폭 등 일제하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60여회 소송중 두번째 쾌거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항소 방침에 따라 곽씨의 기쁨은 물거품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의 재판절차는 우리와 달리 항소심, 상고심까지 끝내려면 최소 6년 이상이 걸려 고령인 곽씨는 1심 승소의 실익이 불투명한 것이다.

8일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현재 항소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일본 정부의 그같은 대응은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한국내 2천300여명을 포함 5천여명의 국내외 피폭자들에게 건강관리수당을 지급해야할 뿐아니라 미국, 한국 등지에서 진행중인 각종 유사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란 풀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언론과 국민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관심도가 미지근하고 한국정부 또한 일본 정부가 항소를 단념하도록 적극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구변호사회는 8일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결과이며 일본 정부는 항소로 한국의 원폭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아서는 안된다"며 "한국정부도 일본 정부의 항소 단념에 필요한 외교적 보호권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한국 원폭피해자를 후원하는 시민모임과 대구·경북 원폭피해자협회(지부장 이호경) 등도 일본측의 항소 단념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구변호사회 최봉태 원폭피해자구조소송단 대표는 "우리 정부가 자존심이 있다면 일본 정부가 항소하도록 용인해서는 안된다"며 "일본 정부가 항소를 포기하도록 가능한 모든 외교채널을 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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