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시 포괄적 대북정책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성명과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포괄적 대북접근법'으로 요약할 수 있는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 골격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미국은 이같은 대북 포괄접근법을 통해 핵과 미사일, 재래식 군비문제 등 3가지를 주요의제로 삼아 그동안 중단된 북미대화를 시작하는 한편 북한의 긍정적인 조치가 있을 경우 대북지원과 제재완화, 나아가 정치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지난 1월 정권교체후 4개월여에 걸친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 제시된 이같은 대북 포괄접근법은 향후 부시 행정부 하에서의 북미, 남북관계 진전의 주요한 정책뼈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 포괄접근법의 주요 관심사안을 정리해 본다.

◇ 미국의 대북정책기조 변화 여부

미국이 대북 포괄접근법을 제시했지만, 이를 계기로 북한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어온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변화했다고 보거나, 대북 강경기조가 온건노선으로 바뀐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정부 당국자들도 지난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의구심(skepticism) 발언을 통해 극명하게 나타났듯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큰 틀과 목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 행정부는 아직까지 북한을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이 변했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대북관계에서 '검증'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끊임없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의 위협문제를 들면서 주장했던 핵, 미사일, 재래식 군비문제 등 3가지가 미국이 향후 원하는 대북대화의 주요 의제임을 분명히 한데서도 나타난다.

다만 그동안 '채찍' 위주로 엄격한 상호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던 부시 행정부가 대북대화 재개를 선언하면서 △대북지원 △경제제재완화 △정치적 조치라는 3가지 '당근'을 제시함으로써 '부정적 톤'이 '긍정적 톤'으로 변화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한 당국자는 "부시 행정부가 지금까지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대북접근법을 바꿔, 대북정책의 큰 틀을 완성해 놓고 포괄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우리 입장 얼마나 반영됐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포괄접근법에 대해 우리 정부는 나름대로 미국이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승수 외교장관도 8일 "미국의 대북 포괄접근법은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화해협력정책과 딱 들어맞는 것으로 우리의 포용정책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부시 행정부가 중단된 북미대화를 조기에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을 우리 입장을 반영한 성과로 꼽고 있다. 또 대북정책 재검토가 다른 정책검토에 최우선해 종료된 것도 의미있게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하와이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TCOG) 회의에서 "부시 행정부출범 후 한국 등의 입장을 고려, 대북정책 검토를 최우선으로 끝내기로 했다"는 뜻을 우리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미국이 3가지 '당근'을 제시한 것을 페리프로세스와 같은 북미관계의 '이정표'(로드 맵)는 아니더라도 북한을 고려한 긍정적 신호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급적 최소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급 수준에서 북미대화 재개를 원했지만 미국은 실무차원의 비공식 접촉에 이어 잭프리처드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간 대화를 제시했고 아울러 우리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진전된 북미협상의 바탕위에서 북미대화를 재개할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사실상 원점에서 재확인한다는 입장차이를 보였다.◇ 부시-클린턴 행정부 정책비교

대북 포괄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클린턴 행정부와의 대북정책 차별성을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접근(comprehensive, broad approach)과 △검증(verification)과 투명성(transparency)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다시 말해 클린턴 정부 때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개별적인 접근을 하던 것과는 달리 부시 행정부는 핵, 미사일, 재래식 군비 문제 등을 포함한 '북한의 위협해소'라는 큰 틀에 기초를 두고 이들 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상해 나간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에 없이 재래식 군비문제를 새로운 북미간 주요 대화의 의제로 상정해놓은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또 '철저한 검증'을 바탕으로 한 투명성 확보를 주요 지침으로 분명히 천명하고 나선 것도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달라진 것이다.

이와 함께 클린턴 행정부 시절 단계별 주고받기식 이정표(로드맵)를 세운 페리프로세스라는 접근단계별 목표가 있었다면, 부시 행정부가 그같은 이정표를 만들지 않은 것은 향후 북한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채찍'을 들겠다는 '여지'를 열어둔것으로 보인다.

◇ '포괄적 접근'과 '포괄적 상호주의'

부시 대통령은 지난 6일 대북정책 관련 성명을 통해 "북한에 대해 포괄적 접근의 틀에서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3월 방미시 제네바 합의의 철저한 준수와 미사일문제 해결, 무력도발 포기 등 3가지를 받고 북한의 안전보장, 적정한 경제협력,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지원 등 3가지를 주는 '포괄적 상호주의'를 제시했다.

이처럼 한·미 양국은 대북문제에 관해 포괄적인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밝힌 '포괄적 접근'과 김 대통령의 '포괄적 상호주의'는 직접 맥을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포괄적 상호주의가 유연성과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줄 것과 받을 것을 한데 묶은 일종의 '패키지 딜'이라고 본다면, 미국이 말하는 '포괄적 접근'은 한 두가지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북한의 위협해소 전반에 대해 얘기해 나가겠다는 대북접근 방식이라는 것.

재래식 군비문제 등 미국이 북미대화의 주요의제를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확대한 것도 의심스러운 부분을 남기지 않고 포괄적으로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결국 북한과의 최종 협상결과는 진척정도에 따라 1대1 주고받기식이 아닌 우리의 포괄적 상호주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 북한의 예상반응

북한은 미국의 대북정책 방안이 나온지 이틀이 지나도록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않고 있지만,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이에 관한 언급이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북한이 당장 미국의 대화 제의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 나름대로의 '독자성'과 '자존심'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과 북미대화 재개에 대한 조건을 내걸 가능성이 있는 것.그렇지만 정체된 북미대화를 이유로 남북대화마저 중단시킬 만큼 북미대화 재개문제에 집착해온 북한이 끝까지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미회담의 격이나 장소, 시기 등을 두고 첫번째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은 있으며, 공식 대화재개 이후 나름대로 부시 행정부를 탐색하기 위한 고압적 자세를 유지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북정책 발표직후 "북한이 미국의 전향적이고 포괄적인 대북대화 자체에 긍정적으로 응함으로써 북미간 의미있는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신경전이 자칫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흐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핵, 미사일, 재래식 군비 문제 등 3가지 주요 의제 중 어느 하나도 북한 입장에서는 손쉽게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일단 북미대화가 재개되더라도 한동안 특별한 진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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