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근무 시대는 열릴 수 있을까'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 토요일 오후는 1주일을 통틀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이날 오후부터 다음날 하루동안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토요일 오후'의 즐거움이 하루 앞당겨질 수 있는 길이 조심스럽게 엿보이고 있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것이다.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금요일 밤부터의 휴식'. 하지만 노동계가 두손을 번쩍 들고 환영하고 있는 반면 재계는 '시기상조'라며 만만치 않은 반발을 보이고 있어 '5일제 근무'의 전면도입까지는 적잖은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근로자 얼마만큼 일하나?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44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씩, 토요일 오전동안 4시간을 일한다는 수치다.
하지만 대다수 근로자들은 물론 외국의 기관들까지 이같은 한국 노동시간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 절대 다수의 우리 노동자들이 법정 근로시간을 훨씬 넘겨 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시장조사 회사 '로퍼스타치 월드와이드'가 32개 나라의 13세부터 65세까지 노동가능인구 1천명씩을 대상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오래 동안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이 세계적인 '일벌레'라는 것을 수치로 나타낸 것.
이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주당 평균 55.1시간을 일해 세계평균치인 44.6시간보다 10시간 이상 더 노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낮춘 프랑스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40.3시간으로 우리나라보다 15시간가량 적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노동시간을 기록한 나라는 터키(54.1시간), 아르헨티나(53.5시간), 대만(53.4시간) 등이었고 신흥 공업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미국과 함께 42.4시간의 노동시간을 보였다.
더욱이 최근 조사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5년전에 비해 더 늘어나고 있다. 외환위기 근로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노동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와 한국방송이 지난 해 8월부터 올 해 초까지 전국의 10세 이상 국민 3천500명을 방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1일 평균노동시간은 평일 6시간7분, 토요일 5시간34분, 일요일 3시간18분으로 지난 95년에 비해 각각 32분, 38분, 1분이 증가했다.
이 가운에 남성의 노동시간이 가장 많이 늘어나 평일 직장에서 남성이 일하는 시간이 95년에 비해 54분가량 증가했다.
반면 수면시간은 평일 7시간35분, 토요일 7시간40분, 일요일 8시간48분으로 95년에 비해 각각 6분, 12분, 21분이 감소했다.
◇정부계획과 노동계.재계 반응
김호진 노동부장관은 지난 달 30일 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 단축 특별위원회 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위원회의 개선논의를 바탕으로 올 가을 정기국회에 주 5일 근무제형태로 노동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장관은 이 자리에서 "근로시간 제도개선은 정부가 추진을 약속한 사안"이라며 "삶의 질 향상과 창의.효율에 바탕을 둔 경제체제 구축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유도, 연내에 입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법안이 확정되는대로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갈 방침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해 10월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단축, 주 5일 근무제를 정착시킨다는 원칙에 합의했으나 세부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노사양측이 △연월차휴가 조정문제 △근로시간 단축 일정 등을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 △초과근로 할증률 하향조정 △월차휴가 폐지 △1년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일부 경제단체에서는 '극도의 경제불황속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시기상조'라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근로조건 후퇴없는 주 5일 근무제 도입'을 고수하고 있다. 현행 법규가 보장하고 있는 근로조건하에서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주상혁부장은 "재계가 요구하는 조건부 노동시간 단축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가 재계의 요구를 반영한 법안을 만들면 노동계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법안 개악 저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시간 단축의 사회적 의미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준다는 '인권적 의미'외에도 노동시간단축은 다양한 측면에서 순기능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근로시간 단축론 주창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동시간이 단축됨으로써 근로자들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줄어 산재율이 떨어지고 노동집중도가 높아짐으로써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또 노동시간이 줄어듦으로써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며 사회적 생산성도 높아진다고 근로시간 단축 옹호론자들은 얘기한다. 실례로 프랑스는 실업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 지난 해부터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는 것.노동시간이 줄어드는만큼 관광.레져.문화산업 등 새로운 산업분야의 활성화도 기대돼 물리적 노동시간의 감소가 경제적 결손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이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앞에서 쉽게 먹혀들지에 대해서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일하는 분위기를 해치는 법안'이 만들어질 경우, 기업활동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근로시간단축 논의 앞에 놓인 가장 큰 암초다.
이같은 암초를 어떻게 피해갈지 노사정 3자합의에 쏠리는 관심이 뜨겁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