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됐던 밭농사 폐농이 현실화되고 있다. 양수기 물로 억지로 심은 벼 모도 하얗게 말라들고 있어 논농사마저 위기를 맞고 있다.
▨밭 농사
영양지역 경우 매일신문이 밭농사 폐농 우려를 보도하던 지난달 28일에만 해도 주산 작물인 고추·담배는 30% 정도의 감수가 예상됐으나, 지금은 50% 이상 감수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수확기를 보름여 앞둔 담배·감자 등의 피해가 특히 심하고, 엇갈이 배추는 잎이 녹아내리고 있다. 봉화 재산면의 주산물인 수박은 지금 이식기를 맞았지만, 앞날은 역시 불투명하다.
봉화군 봉성면 봉양리 박종희(47)씨는 "밭 7천여평에 참깨·고추·콩·감자를 심었으나 참깨는 이미 다 말라 죽었고, 감자는 크기가 새알보다 작아 품값도 못건질 지경"이라고 했다. 안정옥(71) 할머니도 "집에서 식수를 떠 수박 600평, 참깨 300평, 콩 300평을 가꿨으나 수박은 시들시들 골아 가고, 참깨·콩은 싹 말라 죽어 올해는 참기름조차 사다 먹어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안동시 와룡면 서삼리 최종후(64)씨는 "봄농사 시기를 놓친 밭에는 대파해도 배추·무 정도 뿐이라 모두 거기 매달릴 경우 그것마저 과잉생산·시세폭락이 뻔해 이래저래 죽을 노릇"이라고 했다.
◇잎담배=10여일만 있으면 수확을 시작해야 하지만 키가 예년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잎 크기·숫자도 30% 수준에 머물러 최소 50% 이상의 감수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4천여평을 농사 짓는 조기성(54·영양군 일월면 가곡리)씨는 "예년 이맘때면 키가 130㎝정도로 자라고 잎도 20여장씩이나 됐으나 올해는 키는 40, 50㎝, 잎은 5~7장씩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오창현(59·영양군 청기면 당리)씨는 "꽃이 피면 꽃대를 꺾는 적심 작업에 들어가고 그런 뒤에는 아랫쪽 잎부터 익기 시작하므로 올해는 더 이상 담배잎이 크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봉화군 법전면 강우원(53)씨는 "이렇게 되면 60% 정도 감수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마저 아예 녹아 붙은 담배밭도 적잖고, 일월면 주곡리 마을 앞들의 담배 경우 키가 20~30㎝에 불과하다. 청기면 당리·행화리 등의 담배밭 대부분도 배추밭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잎이 마르고 오므라드는 오갈병이 번지고, 영양군 입암면 금학리 동사태마을 입구 등에는 붉은 반점으로 얼룩진 탄저병도 돌고 있다. 이 마을 박종해(71)씨는 "탄저병은 장마 이후 나타나는데 올해는 어떤 왠지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현재 상태대로라도 영양은 850여ha에서 145억원의 소득을 올렸던 작년보다 최소 60여억원의 소득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봉화 엽연초조합 이재국(44) 조합장은 "작년엔 영주·봉화지역에서 160여억원 어치를 매상했으나 올해는 100억원 내외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자=역시 10여일 후 수확해야 하지만, 알이 탁구공 크기에 불과하다. 영양군 청기면 토구리 비탈진 감자밭에는 줄기·꽃잎이 밭고랑을 뒤덮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포기 전체가 겨우 손바닥 두개를 합친 정도에 불과하다. 이 마을 권창호(49)씨는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된 상품을 수확하기 틀렸다"고 허탈해 했다.
◇참깨·콩=참깨는 거의 말라 죽었다.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김창섭(60)씨는 "이 때문에 며칠전 모두 뽑고 밭을 갈아 비웠다. 혹시 비가 내리면 콩이라도 갈아 볼 생각"이라고 했다.
안동에서 가뭄 피해가 가장 심한 녹전·도산·예안·와룡 등에서는 참깨·콩 밭의 85%에는 아예 파종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21일)까지 파종하면 수확이 가능하다지만 면사무소에서는 이런 밭을 한해 대책 불가 지역으로 제쳐 놨다. 도산면 가송1리 엄재만씨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콩밭에 망연자실해 주저 앉아 있었다. 겨우 겨우 튼 싹을 살리려고 면사무소에서 양수기 빌려왔으나 고장난 것이라고 했고, 고쳐 가동하려 할 때는 웅덩이가 말라 있더라고 했다.
◇마늘=최근 들어 값이 오름세로 돌아 섰으나 이번에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줄어 농민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의성 마늘 감수폭은 30~50%에 달할 것으로 농업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가뭄이 심한 안평·신평에선 피해가 더 크다.
안평농협 이원희 조합장은 "마늘값 오름세도 무용지물"이라 했고, 2천600평의 마늘 농사를 짓는 최종태(63·안평면 삼춘리)씨는 "값이 올라 작년 피해 만회 기회가 왔으나 결국 작년과 같은 꼴이 됐다"고 했다. 군청 유통특작과 김해경 유통담당은 "이미 수확량이 30% 정도 줄었고, 가뭄이 일주일 정도 더 계속되면 50%까지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일=과수원들은 거의 스프링클러 등을 갖추고 있으나, 비탈밭 사과·자두는 가뭄 피해를 크게 입고 있다. 자두 주산지인 의성군 봉양면 일산의 경우, 수확을 한달 앞두고 열매가 떨어지는 자연낙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농 오용백 봉양지회장은 "물대기를 못한 산비탈 자두밭에서는 자연 낙과 현상이 나타나 이미 농사가 끝난 밭도 적잖다"고 했다. 산을 개간해 6천평의 과수원을 일군 옥산면 신계리 김태두(57)씨는 "가뭄으로 사과 열매가 곯아 떨어지고, 나무조차 30여그루가 노랗게 색이 변하는 등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의성 경우 사과·마늘 등 밭작물 면적이 8천421ha이나 30%가 넘는 2천986ha가 가뭄 피해를 입고 있고, 특히 220ha는 고사 위기에 있다.
◇고추·수박·산약=봉화군 봉성면 봉양리 임종한(55)씨는 "5천여평에 고추를 심었으나 오랜 가뭄으로 생육이 지연돼 50cm 정도 자란 상태에서 진딧물까지 발생해 밭에 가기조차 싫다"고 했다. 의성군 단촌면 세촌1리 남산에서 3천평의 고추농사를 짓는 김원수(55)씨는 "앞으로도 열흘 정도 비가 안오면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안동시 녹전면에서는 80ha나 되는 산약이 가뭄 피해를 입어 60ha 정도가 위기를 맞고 있다. 호스를 300m나 끌면서 이동식 스프링클러로 1천500평의 산약밭에 물을 주고 있던 사신리 신금옥(65)씨는 "밭 빌리는데 80만원, 퇴비 넣고 씨앗 사고 품삯 주고 파종하는데 150만원을 들였으나 두 자는 족하게 넝쿨줄기가 자라야 할 걸 겨우 싹만 틔운 상태"라고 했다.
최근 1천200여평에 수박을 심었다는 남종선(45·영주시 문수면 월호리)씨는 "포기당 400원씩 5천여포기를 샀으나 시들시들 골아 한달 뒤 수확기가 돼도 돈될 일이 없어 보인다"고 허탈해 했다.
▨논 농사
밭농사가 폐농 길로 접어 든 뒤 농민들은 논농사에 기대하고 있으나 이마저 위험한 상황이다. 영양에서 가뭄 피해가 가장 심한 청기면 당리 안들의 2만평 넘는 논 중에 모를 낸 곳은 20%도 안된다. 김경진(45)씨는 "모판에서 모가 웃자라고 말라 죽어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봉화군 상운면 가곡2리 덕골에선 200m나 깊게 암반관정을 수없이 뚫어 보려 했지만 실패, 1만8천여평의 논 중 3천여평밖에 모내기를 못했다. 운계리 소야마을에서도 6만여평 논 중 10%만 모내기를 했을 뿐이다.
영주시 이산면 지동리 채우진(57)씨는 "다단 양수로 시도했으나 4천500평 중 1천800평에는 모 한포기 심지 못했다"고 했다. 문수면 월호리 머골·속골·부푸골 일대 주민들은 "인근 못이 한달 전에 말랐는데도 당국이 못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안해줘 10㏊ 이상의 모내기를 못했다"며, 뒤늦게 양수기가 지원됐으나 모내기가 언제 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마늘·양파 농사로 아직 모내기를 미루고 있는 의성에서는 2천450ha가 앞으로 큰 문제거리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의성읍, 봉양·안평·신평·단촌·금성·사곡면 등 의성 동부지역에선 10일부터 마늘·양파 수확이 본격화돼 곧 이어 모내기가 시작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쌍계천·미천·남대천·위천 등이 진작 고갈돼 물 구하기가 쉽잖은 것. 일부 지역에선 1모작 모내기조차 아직 못마친 상태이다.
김원택(48·단촌면 후평리)씨는 "조만간 큰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포기하고 다른 작물로 돌릴 참"이라고 했다. 신동석(44·봉양면 장대리)씨는 "이젠 팔 하천도 없어 어디서 물을 구해 모내기할 지 난감하다"고 했다.
영양 당리 앞들에선 심겨진 어린모들이 하얗게 말라들고 있다. 논바닥은 갈라졌고, 말라 죽은 어린모도 적잖다. 모내기는 억지로 해결했으나 더 이상 댈 물을 못구하기 때문. 군청 전병호(41) 농지담당은 "겨우 모내기를 마친 논도 앞으로가 문제"라며, "일주일을 더 보내고도 비가 안오면 많은 어린모들이 말라 죽어 논농사마저 폐농될 우려가 높다"고 했다.
겨우 한번 물을 대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논바닥이 워낙 말라 있고 날씨가 고온 건조해 3, 4일이면 바싹 말라 버리는 것. 농민들도 이젠 모내기보다 심은 모 살리기에 더 매달리고 있다. 안동시 와룡면 가류1리 우메기골 주민들은 산넘어 2.5㎞ 떨어진 안동댐에서 7단 양수로 논물을 대고 있다. 박태환(62) 이장은 "잠 한번 제대로 못자본 것이 벌써 3주째"라고 했다.
그러나 안동에서 가뭄 피해가 가장 심한 녹전·도산·예안·와룡 등 4개면에선 하천이 오래 전에 말라붙어 바닥을 5, 6m까지 파내려 가도 물 찾기가 어렵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봉화·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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