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대문명을 찾아서...

◈(6) 야굴 유적과 미뜰라 유적

유적답사 4일째가 되었다. 와하까에서 떼완떼까까지는 221km의 거리가 되므로 버스로 약 5시간 걸릴 것으로 예상하여 서둘러 출발하였다. 와하까의 근교에는 수 천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뽀떼까인이 이룩해 놓은 고대 유적이 몇 군데 남아 있다.

◈수령 4000년 뚤레나무 이색

와하까시를 출발한 일행이 30분 정도 달렸을 때 도로에서 좌측으로 300m의 거리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구경하였다. 일명 '뚤레나무'로 이름붙여진 이 나무는 수령이 4천년이 되었다고 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있는 나무라고 하였다. 이 나무의 수종은 삼나무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나무의 둘레가 자그마치 57m에 이른다고 하였다. 아직도 싱싱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뿐만 아니라 뚤레나무의 곁에는 아담하게 지어진 작은 성당이 위치하여 마을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었다. 성당의 내부에는 사방의 벽면과 의자의 모서리에 화분을 배치하여 온통 꽃에 싸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 속에 앉아 온화한 모습으로 천주님께 기도드리고 있는 아낙의 표정에서 천사의 얼굴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였다.

뚤레나무는 그 덩치가 너무 커서 사진을 찍기에도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찍으려니 나무의 둥치 밖에 나오지 않고, 백여 미터 나와서 찍으려니 나무의 모습이 아니고 조그만 동산을 배경으로 한 것 같이 보였다.

◈야굴유적 아스떼까인이 조성

뚤레나무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야굴유적이 위치한다. 이 유적은 15세기에 아스떼까제국이 남긴 것이다. 와하까지방은 1528년에 스페인의 에르난 꼬르떼스에게 정복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정복지역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으며, 그 지역의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였다. 그 영향으로 와하까주는 지금도 멕시코에서 원주민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주가 되었으며, 원주민들이 남긴 유적으로 몬떼 알반을 비롯하여 야굴유적과 미뜰라유적 등이 잘 남아 있다.

야굴유적은 사방으로 확 트인 넓은 들판을 끼고있는 나즈막한 구릉에 자리하였다. 유적에 들어서자 이 유적을 관리하는 작은 건물 한 동이 있고, 그 서북쪽으로 벽채만 남은 여러 동의 건물지가 남아있었다. 우선 첫 번째의 건물지에서 비교적 넓은 마당 같은 곳을 보았는데, 그 곳에 석실무덤 2기를 볼 수 있었다. 무덤의 현실은 직사각형으로 그 남쪽으로 연도가 붙어있었고 연도입구의 벽면에는 양쪽으로 선으로 그려놓은 그림이 배치되었다.

또 야굴유적에는 여러 건물지가 연접해 있었으며, 그 북쪽으로 규모가 작은 구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채로운 것은 유적의 사방에 선인장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으며, 일행이 유적을 벗어나 구릉으로 오르는 길에도 온통 선인장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구릉의 정상에서는 유적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었으며, 사방으로 넓은 들판이 전개되고 있어서, 이 유적은 마치 어느 성주의 저택을 연상케 하였다.

유적을 답사하고 구릉의 정상까지 올랐다가 예정시간에 맞추어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일행중 비전공으로 답사여행에 동참한 L교수와 L원장은 벌써 지쳤는지 등치 큰 선인장 그늘아래에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후고전기에 대표적인 미뜰라유적은 작은 단한번의 접착제나 테라코타를 바르지 않고 정교하게 만든 돌 모자이크로 된 유적으로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였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마을에 이르렀을 때에 유적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선인장으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시선을 끌었으며, 유적의 후문에서 하차하여 정문쪽으로 진행하면서 유적을 답사하였는데, 이 유적이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뜰라 유적 돌건물 파노라마

미뜰라유적의 중심건물에는 벽면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무늬를 볼 수 있었다.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서 건물의 벽을 쌓은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북쪽 벽면에 남아있는 무늬들이 선명하였다. 그리고 건물들의 중심에는 비교적 넓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고, 또 동쪽 건물에 붙여서 지하에 구조물이 있었으며, 이곳의 내부는 계단과 통로로 연결되었고 그 중심에 신전으로 쓰였던 방같은 구조를 볼수 있었다.

한편 미뜰라유적의 중앙광장에서 남쪽에 자리한 건물지에는 유적을 깔고 그 위에 현대의 성당건물을 세워놓은 것이 보였다. 어쩌면 유적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도 부족했을까하는 생각에서 성당의 내부를 관찰하는 일은 아예 생략키로 하였다. 하지만 유적의 파괴가 비단 이곳에서만 있었겠는가? 우리 나라의 여러 곳에서도 옛 절터에 서원이나 향교가 세워져 있고, 심지어 탑재를 서원건물의 초석으로 사용한 예도 허다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야굴유적이나 미뜰라유적은 당초의 답사계획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보게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우리 일행은 자유시간을 얻어서 유적부근에 빼곡이 자리잡은 기념품점을 찾았다. 이곳 와하까지역은 비교적 원주민이 많이 살고있는 지역이고 그들이 수공업형태로 만든 민예품이 유명한데, 색채가 다양하고 아름다운 물건들이 많았다. 여성용 숄인 '네보소', 깔개로 사용되는 '까뻬떼', 인디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 같은 자수가 놓인 민속의상인 '우이필' 등 눈길을 끄는 물건들이 많았으며, 물건의 값도 아주 싼 편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한두 가지씩의 물건을 구입하였다.

◈'데낄라'등 선인장 술 유명

그리고 이곳에서는 선인장을 원료로 만들어진 술이 유명하였다. 선인장으로 만든 대표적인 술로 '메스깔'과 '데낄라'가 있으며, 그 중에서 메스깔 술병에는 선인장벌레를 몇마리씩 넣어놓아 이채로웠고, 술맛은 비교적 순한 편이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이날의 점심식사는 미뜰라마을의 아담한 식당에서 메스깔 술한잔씩을 곁들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었다. 이날 식사시간에는 J교수의 생일과 B교수의 결혼20주년을 축하하는 간단한 의식을 곁들여서 더욱 즐거운 한때가 되었다.

글:이명식(대구대교수)

사진: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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