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사회에도 한 가지 편리한 점은 있었다.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념이나 사고도 한 가지, 생활방식도 한 가지, 국가에서 생산하는 생활용품도 한 가지 뿐이니 그것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자유진영으로 넘어온 공산국가 주민들이 선택을 생활의 장벽으로 느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기에는 책임과 기회비용이 따르는 번거로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도 가치의 선택 때문에 사회 전체가 어수선하다. '절대'로 여겨졌던 일들이 여지없이 뭉개지고 사회적 금기들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거나 깨지고 있다. 이념적 문제에서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선택이 너무 제 각각이다. 때로는 사람 쇼크 먹이는 선택이 신선하게 여겨지는 판이니 21세기 초기 한국은 혼돈의 장터라 할만하다.
인간성 무너진 사회
연예인들의 주변사가 사회적 대화의 중심에 있다는 선택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의 하나다. 나라가 좁아서 그런지 요즘 우리의 대화는 연예계 주변을 맴돌고 있다. 누구누구의 약혼과 결혼식이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다. 도올의 공자학 논쟁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대화의 대부분이 연예인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왕건 드라마가 그 단적인 예다. 시정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정치권 핵심 인사들까지 그 대열에 끼어 들어 한몫 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느낌이다. 정치인들의 정체성이 연예인들 보다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 아닌가.
건전한 가치관 사라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예인들이 국민생활의 규범을 결정짓는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온갖 구설 잡태를 만들어 우리의 정신생활을 흐려놓는다는 데 있다. 예쁘장한 탤런트의 누드 사진집 시비나 뚱뚱한 개그우먼의 다이어트 소동은 그런 대로 봐 넘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포르노 배우이고 싶다는 탤런트나 동성애자임을 고백한 탤런트에 와서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섹스 비디오의 주인공들인 O양, P양을 대하면 황폐감 밖에 남지않는다. 안 봐도 될 것을 보게 한 그들의 행위적 결과는 인간에 대한 믿음에 큰 상처를 입혔다. 한 술 더 뜬 경우도 있다. 제법 알려진 어떤 에로영화 배우는 일본으로 건너 가 아예 포르노로 입문해버렸다. 이들이 가져다준 선택의 혼란은 가히 파괴적인 수준이다.
사람의 몸값을 고기 값, 뼈 값으로 따지면 수십 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수 억원의 목숨 값을 붙여주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지금 그 인간성이 무너져 우리 사회에는 건전한 선택의 기준이 없어졌다. 돈만 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극단주의적 선택이 횡행하고 있다. 원조교제니 노래방 보도 아줌마니 하는 것들이 이런 범주의 일들이 아니겠는가.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낮 밤을 가리지 않는 섹스귀신들이 넘실대고 있다. 사회 전체가 관음증에 빠져버린 것이다.
2000년대 들자마자 우리 사회에는 시대정신이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그 결과가 연예인 사회를 통해 일반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참 가치에 대한 고뇌나 인간성을 향한 수신(修身)의 노력은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정신적 파탄자들이 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자기성찰로 방종과 탐욕 없애야
요즘 가뭄이 심하다. 지역에 따라 50년 빈도의 가뭄이라고도 하고 100년 빈도의 가뭄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왕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술과 유흥을 금하고 몸을 가지런히 했다. 송사에 잘못이 있었나 하여 죄수들을 방면하기도 했다. 하늘의 마음을 열려는 자기성찰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50년 빈도의 정신적 가뭄이 들었다. 가뭄의 고통을 아랑곳 않는 파업사태가 그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사회적 규범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잘못된 평등주의, 잘못된 개인주의가 세상을 더욱 메마르게 하고 있다. 우리의 방종과 탐욕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박진용(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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