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뭄피해 왜 되풀이되나-2)지표수 관리소홀

저수량 23만여t의 상주 중덕저수지는 대규모이면서도 이번 가뭄에 바닥을 드러냈다. 물 관리인 안종희(55)씨는 "20년 넘도록 준설하지 않아 저수지에 수초와 토사가 가득 쌓여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이 얼마 안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민 김학근(60.초산동)씨는 "2m 이상 토사를 파 내야 가뭄 걱정을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영양에 있는 96개 저수지 중 16개는 진작에 완전 고갈됐고, 나머지도 거의 바닥이 드러났다. 거의가 60여년 전 만들어졌으면서도 보강공사가 안된 데다, 준설도 14년 전에 한번 이뤄진 뒤엔 방치돼 온 탓이다.

영양에서는 185개 있는 하천바닥 보(洑)도 일치감치 고갈됐다. 오랜 세월 장마때 떠밀려 온 토사로 메워져 하상이 높아짐으로써 물을 담고 있을 용량이 없어지다시피 했기 때문. 의성지역 185개 보 역시 보 높이나 하천 높이나 거의 같아져 버림으로써 실제로는 보 구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울진 부구천.남대천 등 대부분 하천 보도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이걸 퍼 냄으로써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관심은 미미했다.

그 결과, 엄청난 돈을 들여 곳곳에 저수지와 보를 만들고도 사후 유지 관리를 소홀히 해 이번 가뭄에 피해를 키운 것이다.

지표수에 대한 이같은 무감각 뒤에는 "급하면 지하수 뚫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막연한 안일함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큰일 날 소리"라고 손사래쳤다. 관정업체 종사자들은 "경쟁적으로 관정을 개발하면 지하수마저 말라 새로 판 관정조차 2~3년만 지나면 쓸모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는 150~200m 정도 파 관정을 만들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몇 년 안지나 300~400m 이상 굴착해야 물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칠곡군청 건설과 장영석 농지담당은 "지하수 오염 위험 때문에도 관정 의존은 안될 일"이라고 했고, 영농후계자 출신인 김성구(44) 안동시의원은 "관정으로 가뭄을 이기려는 생각은 손쉬운 미봉책을 추구하는 것일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저수지 건설 등보다 돈이 적게 들고 효과도 빠르다는 관정의 이점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농업용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장 상황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역시 지표수를 잘 관리하는 것만이 물 문제 해결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1998, 99년 사이에 준설 작업이 이뤄졌던 영양군 입암면 신촌보.삼산보, 영양읍 진막골보 등은 혹심한 이번 가뭄을 통해 그런 결론을 생생히 뒷받침했다.

가뭄에 끄덕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신촌보는 상류의 입암 상수취수보가 고갈되자 물을 거꾸로 올려 보냄으로써 식수 문제 해결까지 도울 정도인 것. 박종만(43.입암)씨는 "이들 보에도 토사가 쌓여 수심이 1m도 안됐으나 준설 후 최고 3m로 깊어졌고, 그 뒤에는 인근 들이 가뭄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고 강원도 전역 숫자보다 더 많은 1천42개의 저수지를 갖춘 덕분에 영천지역도 아직 한해를 별로 느끼지 않고 있다. 거기다 1995~96년 가뭄 때 경험을 거울 삼아 올해까지 50% 이상의 준설도 마침으로써 1~2월 강수량 174㎜를 고스란히 담아둘 수 있었던 것.

군위군청은 지난 3년 동안 저수지.보 준설 등 보강에 300억원을 들인 효과를 이번에 충분히 보고 있다. 김정대(58.군위읍)씨는 "다른 지역은 먹을 물을 걱정하는데도 우리는 양수기만 있으면 물을 퍼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올해같이 100년만의 가뭄이 닥치더라도 대비만 잘 하면 큰 문제 없이 넘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들인 셈이다.

1998년 건교부 수자원 부존량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총강수량은 1천276억t, 1인당으로는 2천835t이다. 세계 평균치 1인당 강수량은 무려 3만4천t이나 된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은 이래서 나오는 것. 그런데도 우리는 총강수량 중 26%인 332억t밖에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의 경고를 듣고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저수지.보 준설 작업에 나서고 있다. 영주는 3억5천만원, 봉화는 2억원을 들여 합계 55개 저수지를 준설키로 했고, 상주는 41개 저수지 준설(16억원) 작업에 13일 착수했다. 영양은 7억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후다닥거림도 또 올해가 지나면 내팽개쳐질지 모를 일. 봉화군청 이유덕 농지담당은 "종합적 계획과 과감한 투자로 지표수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만이 길"이라고 했다.

상주.박동식기자 parkds@imaeil.com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군위.정창구기자 j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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