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트빌리시 '이베리아 호텔'

◈약소국 그루지야 정치상황 상징물

트빌리시 중심가에 위치한 이베리아(IVERIA) 호텔은 그루지야의 정치상황을 대변하는 상징물 같은 존재다. 17층인 이 호텔은 1961년 건축된 것으로, 1980년대 중반이후 폐허로 방치돼 왔다. 그런데 그루지야 북부도시 아파지아에서 쫓겨난 그루지야 난민 30만명 중 3천여명이 1991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난민수용소인 셈이다. 방이 하나뿐인 호텔 객실에서 전 가족이 살자니 돼지우리나 진배없다. 유리는 모두 깨어져 비닐이나 판자가 대신하고 있고 빨래, 담뇨 등이 벽면을 울긋불긋 장식하고 있다.

그루지야 전체 영토의 약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아파지아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은 소수민족인 아파지아인(4만5천명)의 독립문제 때문이었다. 러시아가 소수민족 지원을 이유로 군대를 보내 그루지야인들을 몰아냈다. 무력이 사용됐고 그루지아인 6만여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난민들은 그러나 그루지야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먹고 살 방도가 없다보니 강.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그루지야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텔로 접근, 이야(29)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했다.

"고향에선 3층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밤 러시아군들이 들이닥쳤고 순식간에 마을전체가 아비규환으로 변했습니다. 러시아가 체첸, 아르메니아의 용병을 끌어들였어요. 그들은 러시아 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축하듯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집은 모두 불살랐구요".

"이 학살을 세계 만방에 알려달라"며 또박또박 말을 잇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파지아는 900여년전부터 그루지야 영토였는데 19세기 러시아가 그루지야 영토에 대해 욕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아파지아 분리가 러시아의 기본정책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학살도 결국 그루지야를 손에 넣기 위한 러시아의 전략중 하나로 볼 수 있죠". 트빌리시대학 역사학과 학장 바흐탕 샬고비치 구루리 교수의 설명이다

김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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