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항거하며 겨레를 위해 몸바친 대가로 너무도 처절하게 몰락해 버렸던 안동의 한 명문가가 광복 56년만에 세인의 추모를 받게됐다. 순국열사 추산(秋山) 권기일(權奇鎰.1886~1920).
유림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대대로 관직과 학문을 이어온 명가의 종손이었던 그는 나라가 망하자 노비를 해산하고 재산을 처분해 식솔들을 이끌고 망명길에 올랐다. 1912년 당시 26세 때의 일이었다.
그는 만주에서 경학사나 부민단.한족회로 대별되는 동포사회 운영과 교육활동에 힘을 쏟았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터전인 독립군기지 건설에 주력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8년후, 추산은 독립의지를 불태우던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의 총칼에 처참하게 살해됐다.
34세의 불타는 생애가 '경신참변'으로 불리는 일본군의 독립군 기지 말살작전에 짓밟혀버렸던 것. 추산은 그래서 한국독립운동사에 화려한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망명 준비에서 독립운동에 이어 순국하기까지, 노비만 40명이 넘던 천석지기의 멸문에 걸린 기간은 꼭 10년. 안동 권씨 부정공파 10대 주손과 뿌리깊던 명문가는 이슬처럼 사라졌다. '천상에서 지옥으로의 몰락'이었다.
만주에서 태어난 추산의 아들 형순(衡純)은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되자 아버지의 고향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1운동 50주년이 되던 1969년 무더운 여름, 북치는 아내를 앞세운채 리어카를 끌고 간장을 팔러 다니던 독립운동가의 후예(당시 52세)가 언론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부끄러운 짓을 해서 멸문한 게 아니어서, 호구지책을 위해 길거리에 나섰지만 당당했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우리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러나 민족정기와 역사의 정의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후손과 문중의 종가 재건노력에 이어 안동의 유림들은 추산 권기일 선생 기념비건립위원회(위원장 이동석)를 결성했다. 안동대 김희곤 교수(사학과)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해 '독립운동으로 쓰러진 명가(名家)의 슬픈 이야기'(영남사)란 책을 출간했다.
오는 15일 오후 3시 안동시 남후면 검암리 대애실에서는 순국열사의 기념비를 건립하고 그 뜻을 추모하는 강연회가 열린다. 독립운동가와 가문의 몰락이 '슬픈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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