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지역에 13일 '꿀비'가 내렸다. 어떤 사람은 '금비'라고도 했다. 대부분 지역에서는 지난달 21일 이후 구경조차 20여일만에 처음 해 보는 비. 누구 없이 환호했지만, 그 값어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물 값으로 본 계산=적게 잡아도 100억원 어치는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경북도에 내려보낸 가뭄대책비 274억여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단 몇시간 사이에 하늘이 선물한 셈.
계산법은 이렇다. 14일까지도 비가 계속돼 도내 평균 강수량이 15mm쯤 된다고 보면, 경북도 전체면적 190억㎡에 뿌려진 비의 양은 약 2억8천500만t(㎥)에 달한다. 16t짜리 급수차 1천783만여대 분량이다. 이런 급수차 한대 물값이 5만원이라는 봉화지역 거래가로 환산하면 무려 890억원대에 이르는 가치이다. 또 관정을 파 양수기로 끌어 올리는 물값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 규모가 된다.
여기다 식물을 활성화 시킴으로써 발생하는 환경적 이익은 더 엄청나다. 우리나라 논에 있는 벼가 배출하는 산소량은 연간 1천230만t. 이를 시중 산소가격으로 환산하면 무려 5조2천800억원에 달한다. 말라붙은 논바닥이 푸른 벼로 바뀔 때 그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아직 부족하지만 공업 용수난도 한시름 덜 수 있다. 1994년 가뭄 때 울산지역 공장들이 입은 조업단축 피해는 매출액 기준 2조4천억원에 달했었다. 이번에도 가뭄이 더 지속될 경우 물 사용이 많은 대구·경북 공단 특성상 조업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가 낙동강 원수값으로 받는 가격(t당 25.5원)을 기준하면 이번 비 값은 73억원 어치 정도 된다.
◇농사에 준 이익=물론 밭작물의 해갈에는 최소 30mm 이상의 비가 내려야 할 상황이어서 이번 비가 해갈에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육에는 엄청나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동안 고추.담배 등 밭작물은 옮겨 심은 후 단 한차례도 비를 맞지 못해 예년에 비해 30∼50%의 감수가 불가피했었다. 천수답 수백ha는 영농이 포기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이번 비가 농사에 준 이익은 영양 지역에서만도 최소 50억원은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버려졌던 밭 100여ha에 콩.채소.메밀 등을 파종할 수 있게 됐으니, 여기서 5억여원의 이익이 생길 수 있다. 콩 소득은 300평당 50만원 정도.
또 평균 10mm의 비가 내렸다면 잎.줄기 등이 눈에 띄게 자라 고추 피해도 10%정도 회복될 것이라고 농산 관계자들은 판단했다. 때문에 영양에서는 고추 한가지만으로도 30여억원의 수확 증가가 예상된다.
담배도 평균 잎수가 2장만 더 생긴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7∼10%의 수확량 증가가 기대돼 10여억원의 소득이 늘어날 수 있다. 여기다 영양지역 고추밭 30%(700여ha)에 가동되던 스프링클러 가동도 중단할 수 있다. 2천여대의 사용료 2억여원이 절감되는 것이다.
군위군청 홍순해 농지담당도 "농지 1ha에 1mm의 빗물을 모으면 10t, 군위군 전체 농지 5천여ha에 10mm의 비만 와도 50만t의 물을 공급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며, "오늘 비는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고 했다.
◇작물의 생기 회복=영양 일월면사무소 이화희(52) 총무담당은 "농작물은 뿌리와 줄기에만 물을 공급해서는 근본적 해갈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비나 스프링클러로 공급되는 윗물을 잎이나 줄기로 받아야 제대로 생육된다는 것. 청기면 당리 김종호(69)씨도 "옛부터 선조들이 수리 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농사의 승패를 하늘(비)에 맡겼던 것도 이 때문"이라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심지어 가뭄 극복을 위한 밭고랑 물대기가 오히려 작물을 말라죽게 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까지 있다. 영양군청 농업관계자는 "담배.고추 밭고랑에 물을 대면 자칫 뿌리가 썩을 수 있어 스프링클러로 윗물을 주도록 유도해 왔다"고 했다.
◇가장 큰 소득은 심리적 안도감=13일 오후 4시쯤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박오현(79) 할아버지는 하늘을 바라고 팔을 벌린채 비를 맞고 있었다. "이처럼 비가 반가운 것은 내평생 처음이야. 농촌이 결단 나는 줄 알았더니 하늘이 결코 무심치만은 않은 것 같아. 사람이나 농작물이나 똑같은데…". 할아버지는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물량적 이익보다 심리적 안도감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역내 평균 강우량이 10mm를 넘어서던 13일 오후부터는 점차 가뭄의 위기감이 높아졌던 군위지역 농민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되살아 났다. 막바지 양파.마늘 수확 작업을 서두르면서도 그냥 비를 맞으며 흠뻑 즐기는 모습이었다. 효령면 성리 이태희(64)씨는 "600평 논이 말라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비 오기 무섭게 옆집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예천 상리면에서는 농민들이 13일 온종일 비를 맞으면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두성(63)씨는 "기다리던 비가 내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점심 생각도 안난다"며 가족들과 함께 담배밭 물관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정창구 기자 j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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