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정권 시절 일이다. 당시 여당의 중진의원이 외유에 나섰다가 국가의 체면을 깎을 정도의 몰염치한 행위 때문에 몰매를 맞았다. 외교행낭편에 물개가죽과 심지어 냄새나는 구두까지 담아 한국으로 보낸 사건은 두고 두고 입방아에 올랐었다.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 총애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불거진 일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당시 같은 고향 출신인 국회의원과 정보기관의 책임자인 두 사람이 벌인 '총애 쟁탈전'이 '물개가죽 파우치사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보기관 책임자가 라이벌인 국회의원의 '추태'를 슬쩍흘려 '진동하는 구두 냄새'는 비난받는 의원 외유(外遊)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민자당 정권때는 의원의 '뇌물외유'가 도마에 올랐다. 상공위원회 일부 의원들이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자동차 전시회 참관을 명목으로 한 외유에 비용을 지원받아 품위잃고 '잿밥에 눈먼 선량'으로 비난받은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는 의원외유때마다 소관 상위의 산하단체 등에서 여비조로 개인적인 기부를 받는 경우가 거의 '제도화'돼 있었다고 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해당의원의 반응이었다. '이런식의 외유가 많았는데 유독 문제될 것이 뭐 있느냐'는 천연덕스러운 해명에 국민들은 할말을 잃었다. 의원들의 '검은 돈'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국회의원의 외유내역과 관련한 판결은 의원 외유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심정을 대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무더기로 나가는 '해외탈출'을 보는 시각은 '놀러가는 외유'였다. 사치품 쇼핑, 골프와 품위실추 등 갖가지 추태는 바로 의원외유라는 다소 극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법원(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이 13일 경실련이 '국회의원 외유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조치를 취소하라'며 국회사무처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내려 앞으로 나라망신, 국회망신의 의원외유가 줄어들게 됐다.
▲재판부의 판시(判示)내용도 공감대 형성이다. '국회 사무처 측은 정보를 공개할 경우 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정운영 투명성 보장과 국민의 알권리 등을 희생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의원외유의 정보 보안이 사회정의를 덮을 만한 일이 아니라는 해석이기도 하다. 정치도 생산적이어야 설득력을 가진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라는 것은 얼마나 낯간지러운 빈말인가. 정치인의 의식수준이 사회발전에 너무 뒤처진다는 질책에 맞서는 국회의원이 줄을 서면 우리사회는 가능성 있는 사회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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