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보고-동해안 불가사리 퇴치 비상

연안어장 황폐화의 주범 불가사리. 그 퇴치에 동해안 어민들이 합심했다. 포항.영덕.울진 등 수협마다 수매사업을 시작하고, 잡은 놈을 어떻게 쓸 것인지도 연구되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불가사리가 알을 낳는 철. 어민들의 마음이 다급하다.

◇무서운 파괴력에 번식력까지=불가사리는 수심 100m 깊이에까지 살면서 전복.굴.성게.멍게.바지락.피조개 등 조개류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일부러 돈을 들여 새끼 방류사업까지 하는 평균 수심 15m의 1종 공동어장 전복.성게 등 고급 패류는 아주 맛있는 불가사리 먹이. 성장도 하기 전에 밥이 되고 만다.

불가사리는 하루에도 바지락 16마리, 피조개 1.5마리를 먹어 치운다. 연간 식사량은 바지락 5천마리. 영덕 창포리 법인어촌계 윤지원(44)씨는 "전복.해삼은 물론 문어 등 정착성 어종까지 피해가 심하다"고 했다. 쳐 놓은 그물에 불가사리가 달라 붙어 가자미 같은 고기까지 잡아 먹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는 어민도 있다.여기다 5~10년이나 살면서 5~7월 산란기가 되면 연간 200만~300만개의 알을 낳는다. 이렇다 보니 그대로 놔뒀다간 연안어장이 불가사리 천국으로 변해 정부의 '바다 목장화 사업'마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얼마나 많은가=영덕 강구수협 박재일 상무는 그냥 "엄청나게 많다"고만 했다. 앞의 영덕 윤지원씨는 "해마다 10여t씩 잡아내도 줄지 않는다"고 했다.

구룡포읍 석병2리 하태식(60) 어촌계장도 "많이 는 것이 분명하다"고만 했다. 연간 2억원 어치의 말똥성게를 잡아 일본으로 수출하는 이 어촌계의 마을 앞 공동어장에서는 해녀들이 연간 1~2회 800여kg씩 잡아 올려도 근절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

영덕 남정면 구계리에서는 어장이나 통발에 걸려드는 불가사리가 하루에 1천여마리에 달한다고 했다. 어느 누구도 불가사리가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연안에 1㎡당 한 마리꼴'로 서식하는 것으로 대충 추정하고 있다.

◇퇴치사업 어떻게 해왔나= 지금까지는 사실상 어촌계 단위 등 어민들이 혼자 떠맡아 불가사리와 싸워 왔다고 수협 관계자들은 말했다. 모범적인 어촌계는 해녀들을 동원해 공동어장을 지키려 했던 반면, 대부분의 어촌 마을들은 비용 부담이 크고 생업에 쫓기기도 해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

그러다 올 들어 포항.영일.강구 등 동해안 몇몇 수협에서 불가사리를 잡아 오면 돈을 주는 '수매 사업'을 시작했다. 시청.군청에서 돈을 분담키로 한 덕분. 포항수협 경우 7천500만원의 자금을 확보해 지난 4월 말부터 오는 10월 말까지 150t을 사들이기로 했다. 잡아 오는 해녀들에겐 kg당 500원, 어선 조업 중 잡은 어민에게는 300원씩 지급한다. 영일수협도 28개 어촌계별로 40~50t의 불가사리 수매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축산수협 등은 자금이 없어 여전히 엄두를 못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양수산부도 '불가사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수산진흥원이 개발한 자루걸레형, 롤러형 등 퇴치 기구를 보급키로 했다. 그러나 그런 장비는 아직까지 현장에 도착하지는 않고 있다. 이때문에 현재도 해녀.스쿠버들이 손으로 잡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잡은 불가사리는 어떻게 하나=불가사리를 잡는다 해도 그 이후 어떻게 처리할지가 또다른 과제가 돼 있다.

포항수협은 수매한 불가사리를 햇볕에 말린 다음 퇴비장으로 옮겨 거름으로 활용토록 한다. 경남 통영에서는 염분을 뺀 다음 농민회.농장주 등에게 퇴비로 무료 공급하고 있다. 산성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중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어 과수원에서 많이 쓴다는 것.

영덕 자연농법연구회는 활성탄과 섞어 쌀농사 비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무 태울 때 나오는 목초액과 섞은 불가사리 가루를 논에 뿌림으로써 미네랄 성분을 공급할 수 있고 문고병 등에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성과가 좋을 경우 불가사리 활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아직은 잡는 양이 늘면 처분에 문제가 생긴다. 해수부나 시청.군청에서 해결할 과제일 것이다.

◇유익한 불가사리도 있다?=수산진흥원 김태호 연구사는 "아무르.별.팔손이 등 덩치 큰 불가사리는 잡아야 하지만, 거미 불가사리는 썩은 어류나 부패한 육류를 먹어 치우는 좋은 일도 하기 때문에 잡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바다 정화에 상당한 일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포항.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영덕.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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