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난 상처 쓰다듬는 황석영

방북과 해외체류 그리고 5년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오래된 정원'으로 작가사회에 복귀한 소설가 황석영(黃晳暎.58)씨. 그가 한국전쟁 때 북녘땅 황해도 신천에서 45일간 벌어진 악몽의 학살극을 몽환적으로 드러낸 한판의 해원굿을 벌였다. 신작 장편소설 '손님'의 출간이 그것.

소설 '손님'은 그가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황해도 신천을 '손님'으로 방문하면서 비롯됐다. 만주에서 태어나고 외가인 평양에서 몇년 살다가 삼팔선을 넘었던 그가 황해도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신천은 바로 '미제 양민학살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남한이고 북한이고 양민학살이야 다 있었지만, 전 군민의 1/4에 해당하는 3만5천여명이 학살됐다니..., 미군의 만행을 설명하는 안내원의 격앙된 어조 만큼이나 소름이 끼쳤어요".

그후 그곳을 몇차례 더 방문하면서 '황해도에는 본토박이가 많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북한에서 월남자가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 황해도'라는 사실이 작가의 눈에 이상하게 비쳤다고 한다.

베를린으로 돌아가자 마자 그는 자료를 뒤지고 황해도 출신 해외동포를 수소문하면서 의문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대 그곳 개화 지식인들은 두갈래의 상반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기독교와 사회주의를 통한 개화였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항일 빨치산 세력이 북한정권의 실세로 등장해 토지개혁이 단행되면서 이들 두 개화세력간의 충돌이 생기고, 사회주의와 기독교가 철천지 원수의 이데올로기로 변하고 말았다.

'손님'이란 그래서 주체적인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킨다. 서양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끔찍한 풍토병 천연두가 우리에게 '손님'이었듯이.

망명지를 뉴욕으로 옮긴 작가는 신천 출신의 어느 목사를 통해 '진실'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학살이 '우리들끼리' 이루어졌다는 것도.... "그 내면적인 죄의식과 두려움이 지금도 그치지 않는 증오의 뿌리가 되었던겁니다. 북한이 이 사건을 '미제'라는 원인제공자에게 돌린 것은 아마 자신들의 체제봉합을 위해서였을 겁니다".

소설 '손님'의 독특한 형식에 대한 물음에 작가는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해서 썼다고 한다. 지노귀굿은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넋굿'. 소설 '손님'을 통해 지금껏 한반도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했으면 하는게 작가의 참된 바람일지도 모른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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