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대문명을 찾아서-(7)빨렝께 유적(상)

멕시코 유적탐방을 시작한 이래 일주일간 우리는 멕시코 고원의 떼오띠와깐에서의 뜨거운 태양과 와하까의 분지를 지나는 연봉들에 빽빽하게 들어찬 선인장 숲을 지나며 건기를 맞아 말라버린 개울과 푸른빛이라곤 없는 삭막한 대지만 보아 왔다. 그런데 멕시코시에서 동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빨렝께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진녹색 밀림이 우거져 있었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미 빨렝께가 속해 있는 치아빠스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강한 바람이 불어 고속도로 곳곳에 긴 트레일러 트럭들이 통나무처럼 쓰러져 있고, 가시만 무성히 돋아 있는 선인장 울타리 안쪽에 파란 풀을 뜯는 말과 양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서서히 밀림지역으로 들어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주민 인디오 많이 살아

여기 치아빠스주에는 멕시코에서 원주민 인디오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빨렝께로 오기 전에 숙박한 산 끄리스또발 데 라 까사스는 고풍스러운 도시로 인디오 민예품 시장이 유명한데 화려한 원색의 수공예품과 가죽제품들이 싸고 많았다. 여기서 빨렝께까지는 180㎞ 밖에 안되지만 길이 좁고 험하여 시간이 많이 걸렸다. 또 중간에 식당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밀림 속의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빗방울 섞인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했는데, 그래도 멕시코시의 좥서울회관.에서 준비해준 김치 한 조각과 곁들여 먹는 빵 맛은 어떤 호텔음식 보다 좋았다.

저녁 6시 어둠이 짙게 깔린 빨렝께 읍내의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식당부터 찾았다. 여느 때처럼 뷔페식 저녁이었는데 우리 일행 중 멕시코 음식의 강한 향신료를 유독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냄새 나지 않는 음식을 찾아 식당을 한 바퀴 돌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진열된 음식 중간에 무언가 통통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어진 음식을 보고는 직감적으로 장어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일행들에게 장어구이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들은 멕시코에서 생선요리를 별로 본 적이 없었는데 오후에 보고 온 아과 아술(푸른 물이라는 뜻) 폭포의 물줄기에 사는 민물장어일 것이라고 짐작하며 접시에 수북히 그 요리를 담았다. 그러나 옆의 프랑스사람인 듯한 서양인 관광객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오랜만에 맛있는 장어구이로 포식하겠다는 마음으로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한입 가득히 넣어 씹었다. 그 때 입안에 퍼져오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느낌- 그것은 장어구이가 아니었다. 진주 남강 다리 아래에서 먹었던 고소하고 기름기 흐르는 장어 구이를 연상하며 미소를 머금었던 바로 그 사람의 입에서는 "아 속았다!"는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그것은 물론 장어구이가 아니라 이 지방의 특산물인 좥바나노.라는 구워먹는 바나나였던 것이다.

◈지하수 이용 스팀욕실 등 사용

빨렝께는 매우 작은 소읍이지만 마야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피라미드가 이곳에 있고 마야최대의 유적인 과테말라의 띠깔로 가는 비행기 출발지가 있어 항상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곳이다. 읍내에서 빨렝께 유적으로 가는 길은 좁고 꼬불꼬불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주위를 검게 덮은 덩굴이 어우러진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리어 어두운데 비까지 내리니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였다. 숙소에서 한시간 가량 쏟아지는 빗줄기를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펴며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소나무가 울창한 모퉁이를 돌자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피라미드가 환상처럼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이 마야유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하는 빨렝께 유적이었다.

빨렝께 유적은 멕시코의 중부 저지대 밀림 속에 숨어 있는 고전기(古典期: 서기 300년~900년경)마야의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이다. 다른 지역의 마야유적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피라미드군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주위가 정글로 덮여 있고, 계곡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전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가에 길게 펼쳐진 계곡을 따라 형성된 장방형의 평지에 불규칙하게 세워져 있다. 그것은 여러 개의 신전 피라미드와 궁전으로 이루어진 중심부가 있고, 계곡을 따라 정글 속 여기저기에 이등변 삼각형모양의 마야아치로 된 석조건축물들이 숲 속의 동화나라 같이 자리잡고 있다. 이 유적은 1746년 농사지을 땅을 찾아 숲 속을 헤매던 안토니오 데 솔리스 신부와 그 형제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마야유적 중 가장 아름다워

유적의 입구를 들어서자 평평한 대지 위에 푸른 잔디와 그 위에 당당하게 우뚝 선 좥대궁전(大宮殿).이 압도하듯이 서 있었다. 유적의 주변은 모두 안개로 뒤덮여 희뿌연데 이 궁전의 전망대와 사면을 둘러싼 계단 위에 반듯하게 서 있는 궁전의 돌 벽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무언가 마야사람의 세심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 궁전은 남북 92m, 동서 73m의 직사각형 건물인데 왕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하에는 옆으로 흐르는 하천의 물을 끌어들여 깊이 3m의 지하수로를 만들고 이 수로를 이용하여 수세식 화장실이나 스팀 욕실을 만들었다. 지금도 이 지하수로 가득히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서남북 사면의 밖은 모두 돌계단으로 쌓아올린 위에 여러 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미로와 같은 궁전은 다른 지역의 마야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정사각형의 안뜰정원을 둘러싸고 배치된 일련의 아치형 회랑들과, 벌집과 같이 붙어 있는 많은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궁전건물의 북쪽에 만들어진 안뜰의 동서 벽면은 넙적한 판석 여러 매를 세워서 만들었는데 이 판석에는 회반죽에 색깔을 입혀 조각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한 쪽 손을 반대편 어깨에 올려놓는 식으로 항복을 표시하고 있는 포로들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이 안뜰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심문하거나 살해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안뜰의 잔디는 비를 맞아 더욱 푸른데 벽면의 그림들은 스페인 군대에 의해 훼손되어 회반죽이 떨어지고 불길에 그을리고 퇴색되어 있었다.

◈천문관측 4층 전망대 눈길

또 궁전의 한쪽 모서리에는 안에 계단을 가진 4층의 전망대가 있다. 위로 올라갈 수 없도록 막아 놓아 올라가 보지는 못하였지만 설명판에 의하면 이 건물 계단 한쪽에는 금성을 나타내는 그림문자가 있으며 최상층에는 별의 관측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벽면이 각각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어 이 건물이 천문관측소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방이 훤히 보이므로 전망대나 감시용 망루로 사용되었을 것으로도 생각되었다.

글:김세기(경산대 교수)

사진:최종만(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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