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브로드웨이격인 런던 웨스트엔드에선 세익스피어의 '햄릿' 공연을 단체 관람하려는 기업들이 줄지어 서있다. 햄릿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문화공연장에는 기업인이나 단체 관람이 줄을 이을 정도로 문화경영이 뿌리내리고 있다.
문화공연에 기업인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한 예술현장에서 기업경영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반갑게도 우리 지역에서도 이같은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한 향우회는 매번 호텔에서 열어 별 볼일없이 돈과 술만 먹는 정기총회 행사를, 간단한 정기총회와 공연장 구내식당 식권으로 해결한 뒤 베르디의 '레퀴엠'을 관람하는 것으로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작은 발상 전환하나가 향우회를 더욱 강건하게 하는 동시에 문화계를 살찌우는 '윈-윈'으로 연결된 셈이다.
대구시 학원 연합회 탁성길(45)씨는 보이지 않는 연극매니아. 다수의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탁씨는 지난 87년 부터 지역 연극을 접하면서 연극계를 뒷켠에서 돕고 있다. 올 대구연극제에도 적지 않은 돈을 후원했다.
학원을 운영해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에 대한 아쉬움을 자주 접했던 그는 "청소년들의 연극 관람 등의 문화활동이 불량학생마저 순화시키는 등 교육적 의미가 크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남동생이 안양예고출신이어서 일찍이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쏟는 땀과 정열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는 "돈 있는 사람들이 학교세울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연극 등 문화사업쪽에 투자하면 미래의 아이들에게 훨씬 더 유익한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연극협회에 후원회가 결성되면 앞장서 참여한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여유가 되면 소극장을 하나 만들어 공연장을 갖추지 못한 극단들에게 전기료 등 실비만으로 대여해 줄 계획도 밝혔다.
정동고등학교 교장 김철수씨도 탁씨와 같은 생각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연극 공연이 주는 효과가 크다고 판단, 2년전부터 입시가 바쁜 3학년은 배제하고 1, 2학년 학생들이 대구시립극단 정기공연을 찾아 관람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난 4월 시립극단 정기공연 '허생'전엔 아예 이들 학생을 위한 별도의 공연이 마련돼야 할 정도였다.
봉덕동 등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기수(56)씨도 연극계에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적극 돕고 있다. 극단 처용 후원회장을 맡고 있어 금전적 후원도 후원이지만 연극 공연이 끝난 뒤면 으레 찾게마련인 그의 식당에서의 뒷풀이는 '인심(人心)' 후원에서 조차 결코 인색한 법이 없다. 연극계에선 그 식당에서의 공짜밥을 못먹었으면 팔불출에 든다.
지금은 조금 쉬고 있지만 성서 태창스틸 유제성 사장은 대표적인 문화경영을 하는 경영인이다. 김덕수패 사물놀이 공연에 직원들을 단체로 관람시키는 것은 물론, 공장의 조경도 조각품들으로 예술적으로 꾸며놓았다. 98년까지만 해도 각종 공연에 직원들과 함께 참석하는 것은 물론 후원금도 곧잘 쾌척한 인사로 꼽힌다.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