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50년간 투자중단 '오리엔탈 특급'명성 잃어
역에 들어서자 터키 독립전쟁의 영웅인 케말 파샤의 얼굴이 새겨진 대형 조형물이 취재팀을 먼저 반겼다. 그 뒤로 플랫폼이 보였는데, 오후 3시50분발 불가리아행 TCDD 열차가 승객을 반쯤 실은채 분주히 출발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공안경찰도, 탑승전 기차표를 검사하는 역무원도 없이 모든게 자유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오리엔탈 특급'이라고 하기엔 열차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했다.
'E52507'이란 번호판을 단 기관차는 크로아티아에서 제조된 것인데 돌출된 동그란 전조등과 자그마한 체구가 장남감을 연상시켰다. 짙은 초록색 객차가 5량 있고 맨 뒤엔 까만색 객차 1량이 마치 바둑이 꼬리처럼 딸려 있었다.
기관사는 목적지인 불가리아 카프쿨레까지 4시간 가량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그곳까지 거리는 315㎞, '특급'이라고 하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시르케지역 위날 알탄 부역장은 "1945년 이후 철도에 대한 투자가 완전히 중단되다 보니 시설이 낡아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터키에는 이스탄불에서 아르메니아 접경지역 카스까지 1천600㎞의 철도가 깔려있다. 그러나 구간 대부분이 단선이고 전철화도 이뤄지지 못한 상태. 이스탄불~불가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맞서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기 위해 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니 평균속도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힘들었다.
터키의 철도망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주변국들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등과는 철길은 있으나 정치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단절된 상태다.
결과적으로 철도의 수송 분담률이 30% 선에 그치고 있으며 수송은 도로가 맡고 있다. 철의 실크로드를 달려가기엔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옛 실크로드에서 터키는 중계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다. 이란 등 중동지역에서 올라온 많은 대상들에게 터키는 유럽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통로였다. 이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대상들의 숙소인 캐러밴사라이(caravansary)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스탄불의 구도시와 신도를 잇는 갈라타 다리 근처 카르데쉼 골목에 그중 한곳이 있는데 이름은 '쿠르순누'였다. 2층 벽돌건물로 1층엔 대상들이 끌고온 말과 낙타를 매어두던 우리가 있었고 2층은 숙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공구를 파는 철물상가로 전락해 있다. 녹슬어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듯한 철문과 건물의 외벽만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애환서린 캐러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출입문에 이곳의 옛 이름이 '류스텐파샤'였다고 기록한 노란색 간판이 이곳이 대상들의 휴식처였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캐러밴사라이는 부르사 등 이스탄불 동쪽 지역에 많이 분포돼 있습니다. 이는 유럽으로 가기 위해 북상한 중동지역 대상들이 이곳을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이지요. 이란의 테헤란, 테브리즈 등지서 앙카라, 이스탄불로 이어졌습니다".
이스탄불 터키학연구소 오스만 피크리 셀트카야 소장의 말이다. 그는 캐러밴사라이가 단순한 여관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대상과 함께 모여든 여러 문화를 전파하는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글 김기진기자.사진 김영수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