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우리들의 사하라

지독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거북등처럼 갈라지던 논밭에서 까맣게 죽어가던 농작물이 놀랍도록 생생해졌다. 사람들의 표정에도 느긋한 여유가 흐른다. 며칠전까지는 마른 하늘을 원망했는데 이젠 오히려 수해를 걱정할 판이다. 인간복제니 화성탐사니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댄들 첨단과학으로도 비 한 방울 뿌리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임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긴 가뭄에 우리네 마음마저 바작바작 타들어가던 며칠전, 지쳐 늘어진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한 남자가 있었다. 올해 45세된 서울의 한 은행원. 그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열린 7일간의 마라톤을 완주하는 과정이 텔레비전에 담겨져 나왔다.

욕망과 시련에 지쳐가는 우리들

유명인사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가르침을 내세운 것도 아니었지만 그 남자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 것은 극한의 열사(熱沙)에서 악전고투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모습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도하차했지만 그는 살갗을 태우듯한 태양열과 목마름, 일사병의 위험, 물집투성이 발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7일간의 사막마라톤을 완주한 그날, 남자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어요"라고.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에서의 탈출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많은 일상탈출의 길들 중에 그 남자는 하필이면 최악의 난코스를 택했다. 절망의 사막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희망을 찾으려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 건너야할 사하라 사막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류대학 가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이름을 떨치고 싶고, 날씬해지고 싶고, 예뻐지고 싶고, 한 100살쯤 살고 싶고…. 이런저런 욕망이 모래폭풍처럼 일어나는 사막. 가다보면 어떤 이는 숨막히는 열기에 쓰러지고, 어떤 이는 모래폭풍에 삼켜지고, 또 어떤 이는 전갈이나 모래뱀에 물려 죽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완주에 성공한다.

포기하지 않는 자신만의 꿈

사막을 성공적으로 건넌 이들의 공통점은 아마도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신만의 꿈이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올해 95세된 일본의 시마다 쇼고(島田正吾)라는 이름의 남자배우는 최근 이틀간에 걸친 1인극 공연을 거뜬히 해내 화제가 되고 있다. 모노드라마는 젊은 배우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무대인데도 그 노배우는 99세까지 1인극 무대에 선 후 100세가 지나서는 신작에 도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남들은 다소 황당해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1시간씩 산보운동을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몸은 비록 노인이지만 마음만은 꿈이 가득한 청년이다.

절망속에 피는 희망의 샘물

얼마전 사상최초로 민간인으로서 우주여행을 다녀온 미국의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는 2천만달러의 거액에다 폭발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첫 우주관광객으로서 하늘여행을 하고 왔다. 그에게 우주로의 여행은 단순한 호기심차원의 여행이나 객기가 아니라 지난 수십년간 키워왔던 일생일대의 꿈이었다. "우주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귀환 일성을 터뜨린 티토의 표정은 꿈을 이룬자의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멋있는 꿈을 가꾸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다. 삼성서울병원의 의사 이병달(52)씨는 최근 열린 국제철인3종경기에서 최고령급으로 출전, 수영(3.9km), 사이클(180.2km), 마라톤(42.195km)을 14시간 59분에 끊었다. 일상이 단조롭다고 느껴 고산등반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미 4천m 이상의 산 다섯개를 등정했고, 풀코스 마라톤대회에만도 10번 출전해 완주했다. 벌써 3년째 왕복 20km를 매일 뛰어 출퇴근하며 보스톤마라톤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그는 자신의 꿈을 이렇게 말했다. "최종 목표는 30년후 여든살에 백발을 휘날리며 서울 한복판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라고.

인생의 사하라를 꿈으로 바꾸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위안을 얻고 희망을 바라보게 된다. 셍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메마르고 황량하게만 보이는 사막의 침묵속에서 빛나는 어떤 것을 볼 줄 알았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전경옥 특집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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