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지난 주말, 고령주부독서회와 통영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숨막히는 일상에서 잠시 풀려나 하루만이라도 싱그러운 자연을 접하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통영은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등의 시인과 극작가 유치진, 작곡가 윤이상을 낳은 예향(藝鄕)이다. 먼저 남망산 비탈에 있는 청마문학관과 생가로 복원한 유약국을 둘러 보았다. 청마문학관은 청마가 펴낸 시집들과 손때묻은 유품, 육필 원고와 연대기별 사진들, 소장하고 탐독하였던 서적 등 시인의 체취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청마문학관은 청마의 마음의 지도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이해하는 충실한 길라잡이였다.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은 고향에서도 이만한 대접을 받고 있구나. 감회가 새롭다.

조각공원, 통영오광대 전수관, 청마 시비를 둘러보고 남망산공원에 올랐다. 남망산에서 내려다 본 통영. '바다가 왼종일/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이따금/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느릅나무 어린 잎들이/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는 김춘수의 '처용단장'의 배경인 한려수도는 올망졸망한 섬들을 펼쳐놓고 있어 그저 황홀하기만 하였다. 해저터널과 미륵도의 달아공원도 둘러보았다. 진초록 초여름 바다를 가슴에 각인해두는 것으로 통영 문학기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올해로 이상화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문학이 한 시대의 정신적 산물이라면 이상화만큼 시대 정신에 충실하려 했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살다간 시인도 드물다. 대구시문학의 1세대인 이상화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성과를 기리는 행사가 대구의 곳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런 행사는 일과성에 그칠 공산이 크다. 원님 지나간 뒤 요란스런 나팔소리같은 행사보다는 제대로 된 '이상화문학관'을 지어 한국문학의 산실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 자기가 발 딛고 사는 땅은 소중하다. 제 땅이 낳은 시인을 기리고 아끼는 정신이야말로 또다른 사랑의 실천적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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